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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항공사상] 미 항공전략의 산실, 항공단 전술학교 조회수 2593
작성자 관리자2 작성일 2019.07.23

 

        ACTS: Air Corps Tactics School, 19201940

 

미 항공단 전술학교(ACTS)는 공군력의 운용원칙과 교리를 개발하여 실제로 전쟁기획에 적용하였다는 점에서 항공전략사상의 발전과정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의 항공단 전술학교는 이탈리아의 카프로니 백작(Gianni Caproni), 두헤 장군(Giulio Douhet), 남아메리카 출신의 스므츠 장군(Jan Smuts), 영국의 트렌차드 경(Hugh Trenchard), 리델하트(Liddell Hart), 그리고 빌리 미첼 (Billy Mitchell)과 같은 개척자들의 전략개념을 기초로 하여 항공력에 대한 구체적인 이론을 개발하였다.

 

그리고, 미국에 적합한 항공교리를 개발함으로써 미 공군을 탄생시킨 지식의 본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1930년대 미국의 전략적 항공력 교리는 이 학교에서 구체화되었으며, 미국의 경제공황시기였던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대적인 항공력 건설을 결심하게 되는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였다.

 

당시 항공단 전술학교의 조직은 구성되어 있었지만 항공요소들의 발전과 적용을 위한 지배적인 개념이 없었으며, 공군력의 합의된 철학도 존재하지 않았었다. 교관들은 육군 장교로서 기존 육군교리에 기초를 두어야 했으며, 게다가 각 군간의 경쟁과 경제적인 사정으로 인해 조종사가 아닌 사람들에게 연구 과제를 납득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1930년대 중반부터 항공단 전술학교의 항공전술과와 전술학교의 교관들을 중심으로 공군력의 운용에 대한 원칙과 교리들이 점차 모양을 갖추어간다.

 

19331934년 항공단 전술학교는 항공전술(Air Tactics), 지상전술(Ground Tactics) 그리고 기초 및 특수교육 등 세 분야로 나뉘어 있었다. 항공전술과는 항공력(The Air Force), 공격(Attack), 폭격(Bombardment), 수행 및 감시분야로 분류되었고 항공전략, 폭격, 공격 및 수행의 통합운용 등을 교육하였다. 그러나 항공전술과-후에 항공전술 및 전략과로 개칭-는 이 같은 철학들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항공전략 사상의 핵심을 제공하였다.

 

또한 ACTS 교관들은 지상군의 피비린내나는 정면대결로 엄청난 인명손상과 비용이 소모된 1차 대전의 체험과 공중공격에 취약한 선진국의 산업조직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즉 전략폭격을 내용으로 한 산업망”(Industrial Web) 이론을 정립하였다. 이론의 핵심은 산업체계의 주요 표적을 폭격함으로써 적을 치명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뉴욕(New York)의 수송, ·하수도 및 전력체계(Electric system) 17곳이 파괴된다면 뉴욕은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고 판단하였다. 매우 정확한 폭격만 가능하다면 이와 같은 성과는 대량파괴나 대량희생을 수반하지 않고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 육군 항공단(Army Air Corps)은 여전히 육군의 한 부분이었고 항공단의 장군급 참모들은 항공단의 임무를 해안방어 및 지상군 작전지원에 한정하고 있는 지상군 장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기 때문에 ACTS에서 개발된 전략개념과 공군력 교리는 전쟁계획으로 반영되지 못하였다.

 

GHQ(General Headquarter: 미 육군 항공총본부)가 설립된 1935년 이후, 항공력을 사용하는 독립적 전략임무는 묵시적으로는 인정되었으나, 일반적으로는 수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장기간에 걸쳐 형성되어온 모군(母軍 : 육군)의 임무를 위협하는 이단적인 사상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신념과 비전, 그리고 용기가 필요했다.

 

1939년 독일의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전쟁이 최고조에 달했던 1941, 연합 대전략(Grand strategy)을 포함한 작전계획을 세우기 위해 연합군 육·해군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육군과 해군은 항공력을 통한 특별한 전략에는 동의할 수 없었고, 합동전 계획 Rainbow-5(Joint War Plan Rainbow-5)의 일반지침에 따라 각 군은 각자의 소요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이 계획은 대서양전역(戰役)을 최우선적인 작전지역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독일에 대한 지속적이고 무자비한 공습, 유럽 서부지역 방어, 태평양지역의 전략적 방어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1939년 독일의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전쟁이 최고조에 달했던 1941, 연합 대전략(Grand strategy)을 포함한 작전계획을 세우기 위해 연합군 육·해군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육군과 해군은 항공력을 통한 특별한 전략에는 동의할 수 없었고, 합동전 계획 Rainbow-5(Joint War Plan Rainbow-5)의 일반지침에 따라 각 군은 각자의 소요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이 계획은 대서양전역(戰役)을 최우선적인 작전지역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독일에 대한 지속적이고 무자비한 공습, 유럽 서부지역 방어, 태평양지역의 전략적 방어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군대는 기초적인 산업동원까지 필요로 하였기 때문에 전쟁계획처(War Plan Division)는 거대한 임무에 직면하게 되었었다. 전쟁계획처는 전통적인 접근방법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때 ACTS의 교관 출신인 해롤드 조오지(Harold George)는 항공력이 육군 지원에만 국한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항공전 계획처에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이 주장은 받아들여졌으며 항공전 계획처-계획. 1(Air War Plans Division-Plan No.1) , AWPD-1이 작성되게 된다.

 

그러나 계획 작성에 허용된 시간은 단지 7일 뿐이었다.이 계획을 작성하기 위해 ACTS교관출신(Laurence Kuter, Haywood Hansell, Harold George, Kenneth Walker)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이 계획에는 전례 없는 규모가 허용되어졌으며 4가지 원칙이 주어졌다. 그것은 유럽 서부지역 방어를 위한 공중작전, 독일지역 및 독일군 점령지역에 대한 공중공격, 유럽대륙에서의 지상군 공중지원작전 및 차후작전에서의 공중지원작전, 태평양 전략방어를 위한 공중작전이었다.

 

7일만에 완성된 이 계획은 ACTS에서 이미 발전되었던 교리에 근거하였으며 곧바로 미국의 항공력 교리(American Air Power Doctrine)가 되었고 현재 세계 최강인 미 공군 건설의 초석이 되었다. ACTS 교관 출신인 이 계획의 입안자들이 공군력의 전략적 운용에 대한 사상으로 미리 무장되어 있지 않았었다면 이 계획은 그렇게 짧은 기간 내에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ACTS는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군사력을 어떻게 건설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면서 항공전략의 사상적 무장 또한 얼마나 중요한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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