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캐나다 참전용사의 순애

송선호(예중위 , 학사62기, 캐나다동부지회장)

필자는 캐나다에서 Store를 운영하고 있는데, 6월이 되면 어느 캐나다 참전용사가 생각나곤 한다.

어느 늦은 저녁 백인노인 한분이 Store에 들어 왔다. 그리고 첫마디가 한국말로 “안녕!”이었다. 노인은 Store에 처음 오는 분이었고 제일 싼 담배를 주문했다. 나는 가격이 싼 담배를 권하면서 어떻게 “안녕”이란 한국말을 배웠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나 노인은 그냥 웃으며 또 오겠다고 하곤 그냥 나가 버렸다. 궁금했다. 노인의 첫인상이 나쁘지 않아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 후 담배를 사러 노인이 다시 왔다. 마찬가지로 “안녕!”이라 인사를 하기에 다시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노인은 자기가 한국전 참전용사라는 것이었다. 반갑고 고마워서 Store에서 파는 커피를 대접했다. 노인은 고맙다는 말을 하며 자주 오겠다며 Store를 나갔다.

어느덧 6개월이 지나는 동안 나는 노인과 아주 친해졌다. 한가한 어느 오후 노인이 담배를 사러 다시 왔다. 그리고는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노인이 처음 부탁하는 것이었고 한국전 참전용사이기에 가능하면 들어 주겠다고 하였다.

노인은 한국전 당시에 좋아했던 “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처녀를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지난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노인은 한국전때 평택근처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당시 19세이던 순이는 키가 작고(158cm가량) 얼굴이 동그랗고 귀엽게 생기 처녀였다고 한다. (그 당시 사랑했던 사이) 사진은 없지만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1952년에 19살이라면 대략 1933년생이며 지금은 70이 훨씬 넘은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

노인에게 그동안 왜 순이를 찾지 않다가 지금 찾느냐고 물어 보았다.

노인은 그동안 한번도 결혼한 적도 없고 돈을 벌면 순이를 데려오려 했는데, 별로 돈도 벌지 못하고 세월만 갔다며 그러던 중 한국친구인 당신을 만나니 순이 생각이나 죽기전에 데려와 같이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노인에게 알아보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너무 힘든 부탁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내가 군대복무를 평택(공군부대)에서 했기에 평택에 사시는 분에게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순이라는 할머니를 찾을 수 있겠냐고 했더니, 주소나 사진이 있으면 찾을 수 있겠지만 세월이 60년이 지난 지금 넓은 평택 땅에서 그리고 그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는데, 어떻게 찾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전 참전용사라니 좋게 말씀드리라고 했다.

노인에게 실망하지 않게 어떻게 이야기할까 생각하니 하루 종일 머리가 아팠다. 며칠 후 노인이 왔다.

필자는 순이 할머니를 찾았는데 결혼해서 잘 살고 있으며, “당신도 행복하게 잘 살라고 말하더라”고 전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노인은 “순이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니 다행”이라면서 어깨가 축 처진 모습으로 Store를 나갔다.

일평생 기다린 순이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이 깨져서 그런지 노인은 그 이후 무척 수척해 보였다.

며칠 후 노인이 6.25행사가 있다면서 재향군인 복장으로 Store에 왔다. 그리고 조만가 이사를 간다고 했다.

나는 이사 가기전에 Store에 꼭 들리라고 노인에게 말했다. 노인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생각하며, 장롱을 뒤져보니 한국인형이 있어 잘 포장하여 두었다.

2-3일 지난 후 저녁시간에 노인이 왔다. 내일 떠난다고 했다.

나는 예쁘게 포장한 한국인형을 참전용사 노인에게 주었다. 그리고 오래오래 잘 살라고 하며 노인을 꼭 안아 주었다. Store를 나서는 노인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그리고 그 눈에는 아직도 잊지 못하는 순이 할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연락처 :519-743-9016 ; 캐나다 동부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