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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우리집 빈의자 조회수 8234
작성자 4 작성일 2007.04.04
韓 仁愛(김병환 회원 가족) 아침 일찍 직장으로 나간 식구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저녁이면 집안에는 적막이 가득하다. 빈 의자들만 놓여 있는 넓은 식탁에서 어두워진 창 밖을 바라보며 홀로 저녁을 먹으려면 문득 목이 메인다. 이 큰 식탁을 살 때에는 이 상(床)에서 행복이 마냥 꽃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쓸쓸하다니… 사업에 실패한 충격으로 반신불수가 되신 시숙께 살림 장만할 비용을 모두 드리고 빈손으로 시작했던 나의 신혼 시절. 방 한 칸에 세를 살며 양은 이남박에 양은 쟁반을 얹어 밥상으로 썼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소박한 정이 오가던 때였음인지 외롭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넘치는 물질과는 달리 마음이 메마른 것 같다. 그 옛날에는 나라가 가난해서 직업군인과 사병(士兵)들의 배고픔이 몹시 심했다. 당시에 군대 생활을 해본 남자들이면 그 때의 배고픔을 쉽게 잊지 못하리라. 남편의 월급도 우리 부부 세 끼 먹기가 어려울 만큼 적었지만 남편은 가끔 퇴근길에 배고픈 사병을 한두 명씩 집으로 데려왔다. 그러면 나는 내 몫의 밥을 그들에게 내주었고 그들은 된장찌개와 김치뿐인 식사도 여간 고마워하지 않았다. 그들이 아끼다 들고 온 건빵 한 봉지는 또 얼마나 귀한 선물이었던가. 동생 같은 청년들이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 나는 푹 끓인 눌은밥 한 공기와 건빵 몇 개만으로 요기를 해도 마음이 흡족했었다. 하루는 우리 부부에게 특별한 날이어서 큰 맘 먹고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몇 가지 만들었다. 그런데 그 날도 남편은 낯선 사병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부잣집 귀공자처럼 보이는 청년이었다. 저녁을 차려서 방으로 들여가니 그 청년이 벌떡 일어나 밥상을 받으려 했다. 나는 남편에게 늘 그랬듯이 그에게 무심코 밥상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청년이 밥상을 받아든 순간 쟁반 밑의 이남박이 툭 떨어지는 바람에 청년은 놀라 음식이 차려진 쟁반까지 바닥에 놓쳐버리고 말았다. 방안은 쏟아진 음식으로 수라장이 되었다. 그는 너무 당황하여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도망치듯 가버렸다. 저녁은 다시 지으면 되니 먹고 가라고 붙잡았지만 그는 결국 가버렸다. 아까운 음식이 버려지고 가난이 서러웠어도 그가 그렇게 가버리지만 않았다면 그때 나는 울지 않았을 것이다. 그 후부터 나는 상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이 생겼다. 형편이 나아지자 괜찮은 나무상을 몇 개 장만했지만 그래도 어떤 아쉬움이 마음속에서 가시지를 않았다. 아파트를 분양 받고 입주할 날이 다가오자 마음을 설레며 가구점을 돌아다녔다. 수없이 이사를 다니며 흠집 난 가구들을 가난을 버렸듯이 다 버리고 새 아파트에서 멋진 새 가구들을 들여놓고 우아하고 풍요롭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구점들을 둘러보며 설렘은 거품처럼 꺼져갔다. 마음에 드는 가구들은 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고급 가구를 장만하려던 꿈은 접어야 했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식탁이었다. 점원은 식구가 넷이면 4인용 식탁을 들여놓는 것이 좋을 거라고 했지만 나는 그야말로 거금을 지불하고 손님 자리까지 포함해서 6인용 식탁을 들여왔다. 연한 황토색 원목에 나뭇결이 물결처럼 무늬 진 식탁과 여섯 개의 폭신한 새 의자에 우리 집을 찾아준 사람들이 앉을 때마다 나는 기쁨 속에서, 너무나 궁핍했던 내 지난날의 증인 같은 그 청년을 떠올렸다. 그 옛날 쟁반을 떨어뜨리고 쩔쩔매다 가버린 청년. 그는 그 날 어디에서 저녁이나 먹었는지... 그 이후 그는 한 번도 내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그도 중년 신사가 되었을 테고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전혀 소식을 모른다. 그가 혹시 우리 부부를 잊지 않았다면 그 날의 일을 떠올리며 마음이 아플 것 같다. 나는 그의 추억 속에서 그 저녁의 서글픈 기억을 지워주고 싶다. 이 멋진 식탁에 그를 앉히고 요리 솜씨를 한껏 발휘해서 푸짐하게 대접한다면 그와 우리는 모두 그 날의 아픈 기억을 지워버릴 수 있으련만. 그런 날은 올 것 같지 않고 식구들마저도 아침 한 끼만 같이 할 뿐 점심과 저녁엔 나 혼자일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나는 비어 있는 의자에 다정한 사람들이 둘러앉아 즐겁게 담소하며 풍성한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특히 그 청년을 자주 초대하여 이것저것 더 들라고 권하기도 한다. 몇 년 동안 그런 공상을 하다 보니 귀티 나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던 그의 모습은 이제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고 빈 의자들만 더욱 눈에 뜨인다. 하지만 앉는 이 없는 빈 의자를 마냥 쓸쓸하게 바라보며 외로워할 수만은 없다. 그래서 그 빈 의자에 인생사가 다 들어 있는 책들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식탁을 책상 삼아 그 책들을 읽고 있으면 우리 집 빈 의자에는 각 시대를 풍미했던 위인들이 두루 나타나 앉는다. 책 속에서 걸어나온 그들은 옛 사람들이 어떻게 살다 갔는가를 알려주며 나를 그들의 세계로 인도한다. 나는 그렇게 옛사람의 세계를 부유하며 빈 마음을 채운다. 그리고 외롭다고 느끼는 시간마저도 얼마나 귀중한 순간인가를 알게 된다. * 약력 소개 : 전남 진도 출생, 신영수필문우회 회원, 수필집( 숲을 바라보며, 산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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