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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사랑하는 나의 딸아 조회수 7757
작성자 4 작성일 2007.02.02
(국방일보 주관,군인 가족 생활수기 최우수상) 이젠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먼저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 됐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딸의 안전 비행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딸이 있는 곳과는 멀리 떨어져 날씨가 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냥 우리 창문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전부인 듯 생각하게 된다. 막내딸은 어느덧 20대 아가씨들이 입는 알록달록한 원피스나 짧은 미니 스커트보다 조종복이 더 잘 어울리는 의젓하고 늠름한 직업 군인이 돼 있었다. 6년 전 1월, 설 연휴가 지나고 눈이 휘날리는 날 아침, 매서운 추위에 딸 아이를 공군사관학교 가입교 훈련에 들여보냈다. 딸 아이를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오면서 눈물을 흘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어엿한 중위가 돼 있다. 어려서부터 파일럿이 되겠다고 책상 위에 항공기 조종사 사진을 끼워 놓았던 모습이 문뜩 떠오른다. 딸 아이가 조종사가 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저러다 말겠지’ 했었다. 초등학교 교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늘 내 맘속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3 여름방학이 지나고 공군사관학교에 원서를 내겠다며 딸 아이는 여러 가지 서류를 준비했다. ‘미련이 남을 수 있으니까 원서라도 넣어 봐라’라는 생각으로 딸 아이의 서류 준비를 지켜보았다. 1차 합격하고, 2차 체력장·신체검사를 하러 공군사관학교에 간다는 딸 아이를 현관 문 앞에서 배웅했다. 혼자 보내기 안쓰러웠으나 직장에 나가는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평소 달리기를 잘 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딸 아이가 아니었기에 체력장에서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내딸은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성격를 갖고 있었다. 결국 합격 통지서를 받았던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길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기회가 주어졌을 때 가장 아름답고 멋진 꿈을 펼쳐 보라고, 딸 아이의 합격통지서를 받고 함께 기뻐해 주었다. 그해 따라 유난히 눈이 많이 오던 겨울이었는데, 눈발이 휘날리는 날 아침. 가입교 훈련에 들어가는 딸 아이를 묵묵히 지켜보았다. 가입교 들어가기 일주일 전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마음이 너무도 어수선했다. 이 추운 날 밖에서 하루 종일 훈련받을 생각을 하니 어느 딸 가진 부모가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있을까. 4주간의 가입교 훈련을 받는 동안 난 새벽마다 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너무도 다행히, 가입교 훈련이 시작된 지 2주가 지나 딸 아이의 편지를 받아 볼 수 있었다. 편지를 읽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하십시오”라는 군인들이 사용하는 문장과 용어들을 읽어가면서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성숙해질 수 있구나, 군인의 모습으로 자리잡아 가는구나 하면서 놀라웠고, 그동안 내 품안에서 마냥 어리광만 피우는 막내딸인 줄 알았는데 이젠 다 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글귀와 함께 하루하루가 너무도 빨리 간다는 등 그곳 생활이 무척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걱정과는 다르게 딸 아이는 그곳 생활에 흥미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가입교 훈련이 끝나고 2월 중순이 지나자 입교식을 한다고 학교에서 초청장이 왔다. 한 달 내내 보고 싶고 걱정됐던 막내딸을 만난다는 기쁨에 초청장을 받고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딸 아이가 어떻게 변했을지 너무도 궁금했다. 하지만 부모이기에 200m 떨어진 곳에서도 금방 내 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딸 아이는 키가 커서 행렬 뒤쪽에 있었다. 예복을 입고 사관학교 운동장에서 행진하는 모습을 바라보니 딸만 있는 우리 집에 막내딸이 아들 몫까지 톡톡히 해내는 것 같아 어깨가 우쭐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고개를 내밀며 계속 서서 입교식을 바라보았다. 관중석에서 입교식 행사를 지켜보는 내내 남편과 나는 가슴이 너무도 설??고, 당장이라도 달려가 꼭 끌어안고 싶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가족과의 만남의 시간이 다가왔다. 짧은 헤어스타일에 우렁찬 목소리와 정복을 입은 모습으로 “필승!” 하면서 인사하는 모습이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했고 자랑스러웠다. 이후 매년 어버이 날마다 학교에서 초청장이 왔다. 행사 참석할 때마다 나의 딸이 아들 없는 우리 집에 아들 몫까지 다 해낸 것 같아 매우 듬직했다. 어버이 날 달아주는 꽃이 어느 부모에게든 소중하겠지만, 나에게는 유난히도 소중하고 애틋했다. 사관학교에 초청돼 제복을 입고 늠름한 모습으로 운동장에서 꽃을 달아주는 나의 딸이 어찌나 사랑스럽든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딸 아이가 생도 3학년 때 남편이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장기간 입원했던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주말에 외출을 나오면 친구들과 놀며 스트레스도 풀어야 하는데, 외출 나오자마자 집에서 옷만 갈아입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오곤 했다. 아버지 옆에서 매끼 식사를 챙겨드리고 말동무도 해 주곤 했다. 하지만 한 번도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오히려 남편과 내 몸을 걱정했다. 매일 학교에서는 전화하고 주말에는 병원에서 간호하는 모습이 어찌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일주일 내내 사관학교 안의 생활이 결코 쉽지 않을 텐데 다른 여대생들처럼 주말에 외출 나오면 쇼핑도 하고 옷과 화장품을 구입하며 자신을 꾸미는 데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싶을 텐데,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딸 아이 고생시키지 않는 것은 나와 남편이 병원 신세 안 지고 건강하게 살아 주는 것이라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됐다. 딸이 3학년 여름 하계훈련에 들어갔다. 찌는 듯한 더위에 한낮에는 무더위에 밖에 잠시라도 서 있으면 땀이 등에서 주르륵 흘렀다. 하지만 나는 에어컨이나 선풍기조차 틀어 놓을 수 없었다. 이 무더위에 전투복을 입고 공수훈련받을 딸 아이를 생각하니 수박 한 조각도 제대로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물론 유격훈련이나 해양훈련도 모두 힘들겠지만, 3학년 하계 훈련에는 공수훈련(낙하산 훈련)이 있기에 더욱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몇 천 피트나 되는 수송기에서 낙하하는 것이 보통일이겠는가. 낙하하기 전 기본 훈련이 많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무엇보다 몇 천 피트의 하늘에서 무사히 착륙하기만을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다행히도 딸은 공수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주말 외출을 나왔다. 새까맣게 그은 얼굴과 팔을 보면서 우리 딸이 더운 여름에 전투복을 입으며 훈련받았을 생각을 하니 무척 대견스러웠다. 여름방학이라고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바캉스나 해외 배낭 여행에 한창일 때 우리 딸이 남자들도 하기 힘들다는 공수 훈련을 잘 마치고 와 기특하기도 하고 ‘여군으로서 할 일을 잘 해냈구나!’라는 뿌듯함이 나의 마음속에 꽉 찼다. 어느덧 딸 아이는 무사히 4년간의 생도생활을 잘 마쳤다. 4년간의 생도생활은 딸 아이의 삶에 아주 특별했을 것이다. 나름대로 인생의 전환점과 새로운 삶의 목표가 세워졌을 것이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이 사회에서 동기를 먼저 생각하고 선후배 간에 지킬 도리와 예의를 배우며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고 건강해지는 삶을 깨달았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딸이 군인으로서 나라를 사랑하고 어떤 일에든지 조국에 충성할 마음가짐과 자세를 배웠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임관하고 나서 이제는 조종 훈련 학생이 됐다. 공군이라면 떠올리는 단어가 가장 먼저 ‘파일럿’이다. 이제 한 발짝 한 발짝씩 하늘을 향해 내딛는 딸 아이를 생각하니 엄마인 나에게도 설렘이 시작됐다.‘우리 딸이 드디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사작하는구나!’ 그 높고 끝 없는 하늘에서 조종할 딸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참으로 멋있고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모이기에 안전이 제일 걱정스러웠다.‘나의 딸이 정말 큰 일을 해내는구나! 매 순간 순발력과 강인함으로 모든 상황에서 잘 대처해 나갈 수 있을까?’ 물론, 딸도 시간이 흐를수록 힘들어지는 훈련에 가끔은 힘겨워하고 지친 모습으로 주말 외출을 나오곤 했다. 부모로서 옆에서 격려하며 지켜봐 줄 뿐 그 무엇도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따뜻한 밥을 지어 주고, 좋아하는 찌개를 끓여 주는 게 전부였다. 주말 저녁에 외출을 나와 피곤에 지쳐 잠든 모습을 바라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를 지녀 왔고,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부모로서 해 주지 못한 부분도 많았는데 늘 밝고 씩씩하게 자라주었듯이 조종 훈련 중 힘겨워했던 적도 많았지만 혼자서 잘 견뎌 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름대로 자신감과 긍지도 생긴 듯하다. 딸 아이가 구름 위를 날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사랑하는 딸아! 여자로서 한 번은 머뭇거렸을 그 길을 너는 전혀 망설임 없이 씩씩하게 선택했고, 그 길이 때로는 힘겹고 무거울 때도 있었겠지만, 내색 않고 씩씩하게 강인한 모습으로 견뎌 주었다. 엄마는 너의 선택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네가 진정 원하는 길을 걷고 있어 너무도 기쁘고, 그 길을 통해 소중한 가르침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배워 무척 뿌듯하단다. 나의 딸아, 사랑한다.’ <김남규 공군17전투비행단 이선미 중위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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