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방부 기자실에서-보라매의 길
공군 조종사들은 꿈자리가 뒤숭숭해도, 몸상태가 좋지 않아도 비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늘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공군사관학교 한 기수의 조종사 10% 이상이 각종 사고 등으로 세상을 등진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위험한 환경 속에서 근무하는 만큼 조종사들에 대한 ‘특별대우’는 당연할 것이다. 평소 공군 조종사들의 자부심은 항상 대단해 보였다. 굳이 조종복을 입지 않아도 될 자리에 조종복을 입고 나타나 주위의 눈총을 받는 일도 흔하다.
공군의 꽃인 조종사 140명이 무더기로 군복을 벗겠다며 전역지원서를 냈다고 한다. 전역 신청이 급증하자(지난해 99명) 공군본부는 급기야 38명에게 제대를 1년 정도 미뤄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에 불복한 34명이 국방부에 인사소청을 제기했다.
공군 조종사들의 집단적 ‘인사소청 사태’(인사소청은 개인별로 제기하는 거지만 다수가 단일 사안으로 동시에 제기했다는 점에서 ‘집단’으로 표현해도 무방할 것 같다)로 ‘그래도 군인인데 심하다’ ‘막대한 국가 예산으로 키워 놓았더니 자기 살길만 찾으려고 한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는 반응이 다수였지만 ‘정해진 의무 복무 기간을 마쳤는데 개인의 직업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 ‘국가가 개인의 일생을 책임지는 것도 아닌데’라는 옹호론도 만만치 않았다.
공군 조종사들이 ‘빨간마후라’를 벗어던지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고된 근무환경, 불확실한 진급,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공군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조종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돌을 던질 수는 없을 것 같다.공군 수뇌부도 이참에 과연 조종사들이 자긍심을 갖고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는지 고민해 봐야겠지만 인사소청 사태에 박수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공사가 단순히 조종 기술만 가르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판·검사를 하다가 개업하는 변호사와 국가 방위의 보루인 군인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베테랑 조종사 1명을 양성하는 데 국민의 쌈짓돈 50억~70억 원 정도가 든다는 설명은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창공을 누비는 조종사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사관학교에 입학하던 그때 그 마음. 바늘구멍 같은 경쟁률 속에서 조종사만 되게 해 주면 뭐든지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초심을 떠올리면 인사소청이라는 수단까지 동원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군인의 길과 직업 선택의 자유. 누구를 비판하고 옹호하기 전에 30대 보라매들이 날개를 펼 수 없는 열악한 현실과 청년 장교들에게까지 개인주의가 뿌리내린 건 아닌지 동시에 곱씹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이번 사태는 유쾌하지 않지만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전환기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정호 MBC 보도국 기자 apro@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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