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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용서와 화해 조회수 7592
작성자 4 작성일 2006.04.17
화를 품고 사는 것은 마음 속에 독을 품고 사는 것과 같다. 이 말은 “화를 다스려 마음의 평화를 얻는 지혜”를 설파한 세계 불교계의 상징적 인물인 틱낫한 스님이 언급한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억울한 누명과 잘못된 인간관계 또는 뜻하지 않은 배신 등으로 엄청난 고통을 받을 때가 있다. 특히 가정·직장에서 무시당할 때 가장 화가 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30~40대 사망률이 높은 것도 직장에서 서로 존중하지 않고 불신과 반목이 화로 변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엄청난 스트레스는 무쇠의 녹이 그 무쇠를 조금씩 잠식해 버리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회복 불능의 상태로 만든다. 분노와 미움·원한·화 등의 부정적 감정은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이 장애물을 뛰어 넘는 유일한 길은 ‘용서’라고 한다. 그러나 용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타인에 의한 상처는 깊고도 오래 가므로 감정의 골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서해야 한다. 그 깊고 심한 상처는 ‘용서’라는 명약으로 치유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대한 용서’를 앙리 샤르에르(빠삐용)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930년 파리에서 살인 누명으로 체포된 앙리는 자신을 체포한 검사에게 복수하기 위해 14년이 지난 1944년 악마섬을 탈출한다. 탈출한 앙리는 남미 곳곳을 전전하면서 돈을 모아 복수를 준비한다. 프랑스 법정 공소 시효(당시 30년)가 훨씬 지난 37년 후, 홀로 파리에 돌아온다. 파리에서 그는 자신이 어렸을 때 다녔던 거리, 친구들과 놀던 장소를 거닐면서 복수의 마음이 점점 바뀌게 됨을 느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체포당했던 장소에서 마음을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 제가 복수를 포기한 대가로 다시는 저와 같은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앙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들렸다. “앙리야 너는 이겼다! 너는 자유롭고 사랑받는 미래의 주인공으로 여기에 있다. 네 원수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라. 그들은 과거의 한 부분일 뿐이다. 너는 여기에 있다. 이 비극적 일에 관계된 사람 중 가장 행복한 사람은 너다.” 결국 앙리는 악을 악으로 갚기 위해 간 사건의 현장에서 검사와 거짓 증언한 증인들을 용서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37년 동안 원한과 복수라는 감옥에서 갇혀 있다가 비로소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우리는 앙리 샤르에르의 ‘위대한 용서’가 아니더라도 사회·직장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부족한 나를 용서하듯 상대방을 용서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 거의 없다고 본다. 용서란 짓밟힌 꽃이 그래도 뿜어내는 은은한 향기와 같아서 우리 공동체가 아름답게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비가 와야 하늘에 무지개가 생기듯 용서하고 눈물을 흘려야 우리의 가슴에도 진정한 무지개가 뜰 것이다. <문정주 공군중령·국방대 직무연수부 mon692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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