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 예 병장 병 673기, 에어로솔루션코리아 ) 존경하는 공군전우회 회원 여러분! 지난 2023년은 우리 공군인들이 꼭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날로부터 70년째가 되는 해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군기술학교가 대한민국 최초로 자체개발한 동력항공기인 ‘1007호 부활’(이른바 부활호)을 개발한 것입니다. 올해는 이 역사적인 비행기가 대통령으로부터 부활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지 70년째가 되는 해이고 더불어 그동안 경상공업고등학교 지하창고에 숨겨져 있던 부활호 원형기의 기골이 발굴 및 복원된 지 2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개발 70주년이었던 작년 공군 내에서 부활호에 대한 특별한 기념이나 선양이 있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특히 작년은 ADEX 2023과 함께 KF-21 보라매 전투기의 비행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면서 우리나라의 항공우주 연구개발역사에 대해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더욱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부활호가 가지는 의미를 되새기고 현재 남아 있는 과제에 대해 논하고자 부족하나마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부활호는 1953년 여름 무렵부터 現 군수학교의 전신인 기술학교가 개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개발 당시의 명칭은 ‘국산기 신형 비행기’로서, 당시 우리 공군이 운용하던 연락기(L형 항공기)와 같은 체급의 비행기였습니다. 이는 항공기술병력 양성교육을 책임지고 있던 교관 및 조교들에 대한 교육 및 연구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기술학교의 교육환경이 매우 열악하였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1953년 10월 10일 수 개월만에 기체를 완성하였습니다. 이 비행기에는 공군 최초로 공대공 피격으로 전사한 L형 항공기 조종사 故 천봉식 대위의 성씨와 행운의 숫자 7에서 따와 ‘1007호’라는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이듬해인 1954년 개발에 참여한 사병들은 은성화랑무공훈장을 수여받았으며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부활이라는 친필휘호를 하사받아 1954년 4월 3일에 명명식을 거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부활호는 실전에 투입되거나 양산되지 않았고 그대로 공군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1960년 10월 대구에 있던 한국항공학교라는 개인 비행학교에 넘겨집니다. 이후 역사 속에서 사라질 뻔한 부활호는 설계자였던 故 이원복 선생님(현지임관, 대령 예편)의 인터뷰가 신문지면에 실린 것을 계기로 2004년에 경상공업고등학교 지하창고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제81항공정비창에 의해 복원작업이 실시되어 2004년 10월 22일에 복원기념식을 거행하게 됩니다. 이 비행기는 지금 공군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2011년 경상남도와 사천시에 의해 별도로 개량복원기가 2대 만들어져서 1대는 현재 사천시청에 전시되어 있고 다른 1대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이 경남테크노파크로부터 빌려와 홍보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활호의 역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최초 국산 경비행기 부활호』에서 보실 수 있으며 이 책은 국회전자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열람 가능합니다. 부활호의 역사와 기술적인 측면을 면면이 들여다보면 오늘날의 공군인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것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개발과정이 공군 4대 핵심가치(도전, 헌신, 전문성, 팀워크)와 맞닿아 있다는 점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비행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보다도 이 비행기가 어떻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개발 당시에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자체적인 항공기 연구개발이나, 그 성과물의 보존 및 선양에 대한 의식이 희박했던 것 같습니다. 부활호가 소홀히 관리되고 군에서 민간으로 넘겨지면서 역사 속에서 사라질 뻔했던 것은 앞으로 우리가 과학기술 연구개발과 그 성과물을 대할 때 어떤 자세로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줍니다. 한편으로는 부활호의 개발 전후 상황에서부터 우리나라 공군 발전을 거론함에 있어 뗄 수 없는 항공우주공학계가 어떻게 형성되며 발전해 나갔는지를 엿볼 수도 있다는 점도 짚을 수 있겠습니다. 역사적인 면뿐만이 아니라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활호가 당시 다른 공군의 L형 항공기에 비해 갖는 기술적인 특색들(특유의 동체 형상과 투하창, 꼬리바퀴의 위치, 슬롯 플랩의 적용과 주날개 날개꼴 등)은 마치 당시 공군의 L형 항공기 운용상황에 딱 맞춘 듯한 설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무엇을 새로 만들 때 누구보다도 이를 사용할 우리 자신의 요구사항에 맞는 실용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부활호라는 비행기를 알기 위해서 아직 우리는 갈 길이 멉니다. 부활호의 정확한 개발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문서자료는 아직 거의 발견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활호가 정확히 어떤 계기로 개발되기 시작했는지, 개발 일정은 어떻게 되었고 개발 도중에 구체적으로 무슨 사건들이 있었는지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개발 이후 부활호가 어떻게 보존 및 관리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민간으로 이관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거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이승만 대통령이 무슨 의미를 담아 부활이라는 이름을 하사한 것인지, 당시 공군 지휘관 참모들은 부활호에 대해서 어떤 인식을 갖고 있었는지, 비슷한 시기 해군에서도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던 항공기 개발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단서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나중에는 이러한 자료가 꼭 발견되어서 아직 비어있는 부분이 많은 부활호의 역사가 더 많이 채워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공군이 역사적 비극이었던 6·25 전쟁 와중에서도 자체적인 항공기 개발의 꿈을 꾸었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겼다는 사실이 국민들에게 더 널리 알려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부활호의 진짜 주인이라 할 수 있는 공군인들의 역할이 절실합니다. 항공우주 과학기술 창달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현재 우리 공군인들이 부활호라는 비행기와 그 역사적 가치를 더 널리 알리는 주체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큰 기념행사와 같은 것은 없더라도 공군인 한 명 한 명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항공우주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줄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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