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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화려했던 옛 추억의 교훈 조회수 7093
작성자 4 작성일 2006.02.09
화려했던 옛 추억의 교훈 30여 년의 군생활을 마칠 때쯤부터 몇 년째 아내와 함께 즐겨 산을 찾은 덕분에 이제는 만나는 사람마다 요즈음도 자주 산에 가느냐가 인사가 돼 버린 느낌이다. 그런 필자가 얼마 전 산을 찾았다가 그만 망신을 당했다. 그것도 해마다 가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찾았던 설악산에서…. 밤 11시 반에 모란역을 떠난 버스는 새벽 3시에 예정대로 목적지 한계령에 도착했고, 일행은 서북능선을 향해 설레는 발걸음을 옮겼다. 6시 조금 지나 끝청에 도착하자 대청봉을 배경으로 멋진 일출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해맑은 하늘과 간간이 떠 있는 구름, 대청봉 주위에 태양이 만들어 내는 밝고 현란한 색깔…. 셔터를 누르던 필자는 곧 중청산장으로 종종걸음 쳤다. 지난해 이맘때 찍은 사진을 크게 확대해 하루에도 몇 번씩 보며 당시를 되새기고 있는지라 새 사진기로 다시 한 번 더 그 광경을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못내 섭섭해하는 아내를 홀로 두고 혼자 이번 산행을 온 것도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것. 기상대의 예보대로 더할 수 없이 청명한 가을 날씨다. 오늘은 정말 운이 좋다며 달리다시피 중청산장에 도착했다. 중청에서 정상인 대청봉과 소청을 들러 희운각까지 내려가는 도중 심상치 않은 이상이 느껴졌다. 무릎이 아파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장애인처럼 이상한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온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설악산에서도 오르내림이 가장 심한 공룡능선을 가기는 무리다. 산행을 많이 했으니 안심하라고, 그리고 벌써 몇 번이나 갔던 곳이니 전혀 염려할 것 없다고 큰소리까지 쳐 놓았는데…. 무릎 상태가 좋지 않은지라 쉽고 빠른 천불동 계곡으로 하산하기로 했지만 서운하다 못해 억울한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설악산에서도 가장 경관이 좋다는 신선대에 들르기로 한다. 탁 트인 꼭대기 신선대! 맑디맑은 가을 하늘과 공룡능선의 기암괴봉에 군데군데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 기기묘묘한 암벽과 해탈한 나무, 멀리 동해 바다와 주변 도시 등이 어우러진 설악산의 풍광은 가히 최고 중의 최고였다. 몇 시간만이라도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선대를 얼마 남겨 두고 시간을 확인한 뒤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바위에 기대어 음식을 먹는 여유란 이제까지 맛보지 못한 또 다른 별미였다. 단체로 가는 산행에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서두르다 보면 이런 즐거움은 생각도 못하는 것. 필자는 한 장이라도 더 좋은 사진을 찍으려는 욕심이 앞섰기에 더욱 그랬다. 다른 생각 없이 풍광을 즐기며 한가하게 휴식을 취하자니 말 그대로 설악의 일부가 된 느낌이었다. 왜 이리 힘들까. 일주일에 큰 산 다섯 곳을 다니면서도 피곤한 줄 모르던 사람이 이 무슨 망신인가. 가만히 돌이켜 보니 지난 일 년간 장거리 산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산을 좋아하는 아내가 무릎을 수술한 뒤 혼자 가기 미안해 집 근처 산으로 고작 두세 시간 정도 다닌 것이 전부였다. 3시간짜리 몇 번 한다고 해서 10시간짜리 한 번에 견줄 수 없는 것이 산행이다. 그런데도 왕년의 화려했던 추억에 사로잡혀 착각한 것이다. 처음에 빨리 걸으면 얼마 못 가서 주저앉게 되므로 시작은 제자리걸음처럼 하는 것이 장시간 산행의 기본이다. 그러나 일출에 맞춰 사진을 찍으려는 욕심이 앞서 단숨에 달려갔으니 기본을 어긴 것이다. 모든 것이 자신의 업보였다. 화려했던 옛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한 죄, 좋은 사진을 찍겠다는 욕심에 산행의 기본을 무시한 죄 등이 함께 경고하는 것이다. 화려했던 옛 추억일랑 빨리 잊어 버리라고. 그러고 보니 옛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이것뿐만은 아닐 성싶다. 현역 시절의 작은 성과를 아직도 되풀이하며 듣는 이들을 괴롭히지는 않는지, 당시의 부하들에게 아직도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이런저런 정책에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지는 않는지, 훌쩍 커 버린 후배들의 성장을 대견하게 보아주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쯤 되짚어 볼 일이다. <예·공군준장 금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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