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초기의 실상 회고·직접 찍은 사진 130여장 한권에
6·25전쟁 당시 생사를 건 임무수행 등 소중한 기록 담아
기사사진과 설명
이강화 장군 사무실 속 캐비닛에는 일련번호가 새겨진 앨범 수십 권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그중 다섯 권에는 그가 찍은 6·25전쟁 당시 공군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로 가득하다. 이 장군이 앨범 속 사진의 촬영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정의훈 기자 |
“이 책은 자서전이 아니에요.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당시 군인 중에 고생 안 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많은 장병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됐지요. 부하들이 출격해서 돌아오지 못할 때 마음이 참 무거웠지요.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랄까. 그럼에도, 책을 낸 것은 6·25전쟁을 비롯해 대한민국 공군의 창설 초기 실상을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 후배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기록으로 남기고 보존해 후대가 다시는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일에 너무 소홀합니다.”
6·25 발발 64주년을 맞아 독특하면서도 의미 있는 책 한 권이 발간됐다. 대한민국 공군 1세대로 6·25 출격 조종사이자 기록사진가인 이강화(88) 예비역 공군준장이 이윤식 작가의 도움을 받아 쓴 ‘대한민국 공군의 이름으로’(플래닛미디어 펴냄·사진)가 그것. 이 책은 두 가지 이유에서 눈길을 끈다. 육군 위주의 6·25전쟁사에서 벗어나 공군 중심의 전쟁사를 담았다는 점과 회고 내용에 생생한 사진 130여 장을 곁들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더구나 사진 대부분은 저자인 이 장군이 직접 찍은 것이라 놀라움을 더한다. 그는 카메라가 귀했던 그 시절 임무를 수행하면서 프로 사진가 못잖은 사진을 남겼다. 이는 경남 하동 부잣집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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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9월 13일 미 육군 7사단 항공대로부터 인수한 L-4기가 편대비행하고 있다. 플래닛미디어 제공 |
“예술을 사랑하고 신문물에 열려 있던 선친께서 14살에 일본 유학을 떠난 제가 카메라를 사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앞으로는 사진이 일반화될 테니 너와 네 주변 사람들의 역사를 사진으로 남기라’면서 허락해 주셨죠. 이후 6개월치 학비와 맞먹는 값의 첫 카메라를 샀습니다. 창군 초기 공군에서 카메라를 가진 사람은 김구 선생의 아들이신 김신 백범김구기념관장과 저뿐이었죠.”
이후 이 장군은 조종사로서, 작전장교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창군 초기 공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현재 남은 초기 공군 사진은 대부분 이 장군의 작품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만큼 많은 기록을 남겼고 그 자취가 책에 담겨 있다. 하지만, 사진에 치중하느라 책 내용이 부실할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공군 정사(正史)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과 출격 조종사로서, 작전장교로서 직접 체험한 내용·비화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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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후 항공전력의 ‘제트화’를 위해 미국에서 실시된 최초의 제트기 비행교육 중 우리 조종사들이 저압실에서 감압 훈련을 받고 있다. 플래닛미디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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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평양 미림기지 철수 당시 한미 공군의 전쟁고아 공수작전을 통해 김포 기지에 도착한 고아들. 플래닛미디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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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8월 F-51 조종사들이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 실시에 앞서 출격신고를 하고 있다. 플래닛미디어 제공 |
6·25 초기 이승만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제원도 모른 채 T-6을 몰고 정찰임무를 수행하던 중 야크기 3대의 공격을 받았던 일, 적에게 점령당한 서울 상공에서 심리전단을 뿌리고 깜깜한 밤에 귀환하던 중 활주로가 보이지 않아 생사를 넘나들던 중 동료들이 준비한 차량 불빛을 보고 무사히 착륙한 일 등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군복이 없어 밀가루 포대를 염색해 입거나 급식이 열악해 고생했던 창군 초기 일화와 출격 나간 동료·후배 조종사들이 하나둘 돌아오지 않을 때의 자괴감 등은 안타까움을 더한다. 영화 ‘빨간 마후라’ 제작을 지원하면서 주제곡을 왈츠풍에서 폴카풍으로 바꾸도록 유도한 일화 등은 공군사의 이면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공군력의 관점에서 6·25 재해석을 시도하는 등 묵직함도 잃지 않는다. 6·25는 항공전력이 승패를 좌우한 최초의 본격 항공전이었고 우리에게 처음으로 공지합동작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전쟁이며 항공전력이 인도적인 기능도 수행했다는 분석이 그것. 유엔 공군의 활약을 강조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6·25 때 우리 공군이 전투기 한 대 없이 시작했지만 1년 후 단독항공작전을 펼치게 된 것은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미 공군을 비롯한 유엔 공군들의 활약상이죠. 6·25 중 유엔 공군의 출격 수는 무려 88만여 회입니다. 우리는 8000여 회에 불과하죠. 우리 공군의 활약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엔 항공전력이 보여준 역할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선배들의 노고를 읽고, 배우는 한편 선배들에 뒤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섰으면 한다는 이 장군은 공군 후배들의 분발을 당부했다.
“눈앞만 보지 않고 앞을 내다보는 공군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전쟁을 막으려면 공군력이 가장 앞서 가야 하는 만큼 좀 더 공군력을 강화하고 뛰어난 인재를 많이 배출해 주길 바랍니다. 또 장병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이 책을 많이 읽어서 우리 공군의 모습을 널리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