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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한미 정상회담, 안보성과 크다 조회수 6355
작성자 관리자1 작성일 2014.04.30

최명상 (예)공군준장 
명지대 초빙교수

최명상 (예)공군준장 (공사 16기)
명지대 초빙교수


 

 

 지난 25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함께한 정상회담의 의미와 성과를 분석한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첫째, 북한의 비핵화 달성 및 인권침해 책임을 추궁하기로 합의했다.

북한이 말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발은 새로운 강도의 국제적 압박을 가져올 것이라며 북한이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등 추가 도발하면 이를 강력히 응징하겠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또 김정은 일당의 북한주민에 대한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인권침해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의 일환인 드레스덴 통일 구상을 미국이 지지했다는 점이다.

 둘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 재검토 합의다.

2015년 12월로 예정된 전작권 전환시기와 조건을 재검토하는 데 공식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또한 두 정상이 한미연합군사령부를 함께 방문함으로써 한미동맹의 중요한 의미와 대북 억지 태세 강화를 위한 가시적 성과가 있었다. 한미 정상이 한미연합사를 함께 방문한 것은 창설 이래 처음이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한미동맹이 오늘날 한미연합사로 돈독히 발전한 것은 격세지감이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53년 한국전쟁이 400만 우리 민족을 희생시키고 안전보장책도 없는 휴전으로 끝나려 하자 한미동맹을 강력히 요구했었다. 그러나 미·일 동맹으로 아시아의 반공 축을 형성하려는 아이젠하워 미 행정부는 이를 반대했다.

결국 이승만은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고도의 전략적 강수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성사시켰다. 이어 1974년 베트남의 공산화를 목격한 박정희 대통령은 제2의 한국전쟁 발발 시 미국의 자동개입체제인 한미연합군사령부(ROK/US CFC)를 1978년 창설했다.

1949년 창설된 유럽의 NATO 방위체제보다도 강력한,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연합방위체제를 탄생시킨 것이다. 하지만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2012년 4월에 전작권을 전환하고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려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2015년 말로 연기했었지만 이번에 다시 전환시기를 재검토하는 데 합의한 것이다. 오는 10월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그 시기를 재논의해 북핵 위협이 사라질 때까지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셋째, 미사일방어 협력 합의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 (KAMD)를 독자적 시스템으로 개발하되 한미 간 상호운용성을 확보하기로 합의했다.

 넷째, 일본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에 대한 비판 합의다. 태평양전쟁 중 일본군은 종군위안부에 끔찍하고 지독한 인권침해를 자행했으므로 일본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한미 FTA 강화 합의다. 한미 FTA에서 수혜 품목에 관세 혜택을 주는 원산지 규정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한국의 참여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특히 안보적 차원에서 성과가 크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합사 방문 시 “우방과 우리 삶의 방식을 방어하는 데 군사력 사용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 김정은은 이러한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명확히 인식하고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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