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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한국과 필리핀의 두 전직 대통령 조회수 11085
작성자 관리자1 작성일 2012.11.05

光州에서 15回 蔡 洛 鎬

蔡 洛 鎬 (예 준위, 준사관 28기, 광주지회 고문)

서울 중구 장충동에 있는 장충체육관은 건설한 지 50년 만에 지상 3층, 지하 2층 연면적 10,373㎡(약 3,143평) 규모로 지난 8월 전면적인 재보수 리모델링에 착수했다고 한다. 기존보다 509석이 늘어난 5,248석으로 새롭게 단장(丹粧)할 것이라고 한다.

1963년 2월 국내 첫 돔형식 실내체육관으로 장충체육관이 문을 열었다. 당시 우리나라 국민소득(GNP)은 1인당 80달러였다. 지름 80m에 이르는 돔 철골구조, 야간 경기를 밝히는 조명, 냉난방 시설은 전에 보기 힘들었던 첨단설비들이 화제였다. 돔 천장 올리는 기술이 달려서 우리나라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세배가 넘던 아시아의 선진국 필리핀 기술자들이 거들었다고 한다.

1960년대 가난하여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기에 장충체육관에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경기는 더없는 오락이자 축제였다. 그런 멋진 경기가 있는 날이면 국민들이 라디오와 흑백TV 앞으로 몰려 그 당시 스포츠중계로 이름을 날렸던 문화방송(MBC) 임택근 아나운서의 짜릿한 승리의 중계방송이 흘러나오면 열광과 환호의 함성이 전국에 울려 퍼졌다.

「박치기 왕」김일, 「백드롬 명수」 장영철, 「당수귀신」천규덕의 프로레슬링 경기가 있는 날은 동네 만화 가게는 꼬마 손님들로 미어터졌다.

1966년 프로복서 김기수가 이탈리아 벤베누티를 물리치고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 챔피언이 탄생한 순간은 장충체육관 역사에서 참으로 화려한 페이지 중 하나였다. 유복자(遺腹子)로 태어나 가난을 운명으로 알고 살아온 한국 젊은이가 66전 66승(전승)의 세계 챔피언을 물리친 순간 온 나라가 떠나갈 듯 환호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돌이켜 보면 장충체육관은 1960~1970년대 지금 60대 이상 노인들의 애환(哀歡)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난했던 한국과 동양의 강자였던 필리핀의 운명이 엇갈린 것은 출신, 경력, 성격까지 비슷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마르코스 필리핀 전 대통령 치하(治下)였다. 당시 외교가에서는 두 사람의 닮은 점은 화제였다고 한다. 1917년에 태어난 두 사람은 까무잡잡한 얼굴, 날카로운 눈매, 작은 키, 카랑카랑한 목소리까지 비슷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같은 군인출신으로서 마르코스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훈장을 27개나 받은 군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1966년 그런 두 사람이 만났다. 월남 참전 7개국 정상회담 자리였다. 당시 한국의 1인당 GNP는 130달러였고 필리핀은 1인당 GNP가 269달러로 동남아 선두그룹이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가난한 나라의 박정희 대통령을 무시하고 경원(敬遠)했다. 이유는 월남전에 보낸 병사 수 때문이었다.

한국은 42,500명을 베트남에 보냈다. 가난했지만 미국에 이어 둘째로 발언권이 셌다. 호주 4,500명으로 3위, 필리핀이 2,000명, 뉴질랜드 170명, 태국은 17명에 불과했다. 당시 월남전 참전을 앞두고 반전 움직임은 한국에도 필리핀에도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월남전을 국익(國益)을 위한 기회로 여겼고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뚜렷한 대비(對比)가 두 정상의 연설에서 나타났다.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맨 처음 환영사에서 느닷없이 평화론을 역설했다. “평화와 자유는 모든 인류의 권리이며 소망입니다. 평화와 자유가 없는 곳에 인류의 번영과 행복은 없습니다.” 단상에 앉아 있던 정상들의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노(大怒)한 존슨 미국 대통령은 열렬히 손뼉을 쳐댔지만 그것은 분노의 표현임을 동석했던 정상들은 알고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연설은 달랐다. 월남전에서 휴전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외국 군대가 철수해선 안 된다며 월맹의 베트콩 지원 중지를 촉구했다. 말은 베트남을 향했지만 실은 한반도의 안전을 고려한 사려(思慮) 깊은 심모원려(深謀遠慮)였다. 마르코스는 자신이 평화주의자임을 과시(誇示)하는데 그쳤지만 대한민국은 한 지도자의 현명한 선택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국군의 현대화가 이뤄졌고, 외화 획득 통로가 열렸으며, 기업인들의 해외 진출 물꼬가 터졌다. 두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이 같았다. 장기 집권 끝에 한 사람은 암살당하고, 다른 한 명은 부정부패까지 만연하여 성난 국민들에 의해 쫓겨난 것만 달랐을 뿐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다스렸던 국가의 지금 모습은 너무도 다르다.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인구 5,000만명을 갖춘 「20~50 클럽」에 세계에서 7번째로 가입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틀을 다졌으며, 반면 필리핀은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10분의 1수준인 약 2,000달러에 머문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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