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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그날의 안개 조회수 12471
작성자 4 작성일 2012.07.10

                 韓仁愛(김병환 회원가족, 산영문학회원)

화가들은 산허리에 안개가 서려있는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우뚝하고 봉긋한 산허리를 포근히 감싸 안은 듯 드리워진 산안개는 깊은 계곡처럼 아련함과 고아한 운치를 더해주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섬들이 점점이 떠 있을 뿐 끝없이 망망한 바다를 뒤덮은 바다 안개는 어떤가. 바다는 섬사람들에게는 삶의 터전이며 오가는 길인데….

나는 초등학교 봄방학 때 바다를 완전히 덮어버린 안개를 만난 적이 있다. 봄이면 산과 들에는 생기가 가득하고 꽃들이 피어나지만 사람들은 배고픔이 극심한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때였다. 그럴 때면 가난한 내 홀어머니는 양식을 얻어오기 위해 나를 외삼촌이 사는 섬으로 보내곤 했다. 나는 그런 방문객이 되는 게 정말 싫었지만 삼촌 부부는 나를 친자식처럼 사랑으로 대했다.

방학이 끝나가던 그날도 삼촌은 조각배에 나를 안전하게 앉힌 다음 해산물과 곡식을 싣고 어머니가 계신 섬으로 향했다. 삼촌네 섬을 떠나 바다 중간 쯤 왔을 때였다. 서서히 펼쳐지던 안개가 이내 짙게 끼어 천지를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노를 젓는 삼촌의 모습이 마치 유령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그러자 “삐거덕~ 삐거덕~” 노 젓는 소리가 귀신이 나올듯한 폐가의 문이 저절로 여닫히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리고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다 영영 돌아오지 못한 동네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을 스쳤다. 그들도 이런 안개 때문에 항로를 잃고 바다에 빠져 죽었으리라는 생각이 들며 소름이 돋을 만큼 무서워졌다.

그 순간 삼촌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까지 우리 삼촌의 노래보다 정다운 노래는 들어보지 못했다. “어기여차! 우리 딸아/ 떡을 주랴, 옷을 주랴/ 업어 주랴, 안아 주랴/ 어기여차! 예쁜 딸아/ …” 키가 크고 콧대가 우뚝한 삼촌의 우렁찬 노래 소리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삼촌의 노래는 어린 내게 불안을 잊게 하고

다른 배들에게 우리의 위치를 알리는 신호였을 것이다.

두려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조금 옅어진 안개 속에서 여인의 외침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삼촌이 “거기 누님이요?” 하지 않았다면 너무 무서웠던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혼령의 소리로 알았을 것이다.

무사한 상봉을 기뻐하며 곡식자루를 주고받는 삼촌과 어머니의 다정한 모습은 내 가슴속에 아름답고도 애절한 그림으로 간직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나는 도시로 나와 바쁘게 살며 바다를 잊어갔다. 그리고 삼촌에게 은혜를 갚으려던 결심도 잊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삼촌은 세상을 떠났다. 내 불효는 칼날처럼 가슴속을 찌르고 어머니는 하나뿐인 동생의 주검 앞에서 무너져 통곡했다. 어머니의 통곡은 가슴속에 쌓여있던 고단한 삶의 설움이 폭발하는 것 같았고 갇혔던 물이 둑을 무너뜨리며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앞으로만 달리는 세월처럼 나도 어머니의 통곡까지 잊은 채 앞날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며칠 전, 문우들과 함께 달려간 아름다운 변산반도. 그곳의 대지는 전날 내린 비에 촉촉이 젖어있고 물이 담긴 논에서는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채석강의 바다도 자욱한 안개에 뒤덮여있었다. 수십 년 만에 그런 바다안개를 만나자 가슴속에 가라앉아 있던 소녀시절의 추억이 안개를 따라 피어올랐다. 추억이란 그렇게 비슷한 매체를 통해 살아나는 것이었다. 채석강의 바다안개 속에서 갑자기 삼촌이 그리워졌고 어머니의 통곡이 생각나 목울대가 뻐근해지고 콧등이 시큰해졌다.

어머니의 버팀목이었으며 내게는 아버지와 같았던 외삼촌. 보고 싶은 사람을 결코

볼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 그리움은 더욱 강열해지는가. 바다안개는 간절한 그리움과 내 고향의 향기인 바다냄새를 물씬 풍겨왔다. 어머니와 삼촌에게서도 늘 바다 냄새가 났다. 그들의 혈육인 내 혈관에도 바다냄새가 흐르고 있으리라.

채석강의 너럭바위에서 부러진 낚싯대를 무심코 주워들자 삼촌과 낚시하던 기억도 되살아나며 안개 속에서 구성진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각배에서 들었던 삼촌의 노래였다. “삐거덕~ 삐거덕~” 노 젓는 소리도 들렸다. 작은 배에 작은 소녀를 싣고 이 섬에서 저 섬을 향해 노를 젓는 삼촌의 모습이 안개 속에서 실루엣으로 보였다. 가난한 시절에 목숨 같은 식량을 나눠주던 삼촌의 사랑이 새삼 가슴속에서 안개처럼 번져 올라 내 눈을 적셨다.

그날 채석강의 안개 속에서 나는 삼촌에게 비로소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명복을 빌었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보다 삼촌이 더 고마웠고 그리웠다는 말도 전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우들이 따라준 막걸리 한 잔에 취하지 않았어도 여느 때 같으면 나는 가난했던 유년의 추억으로 우울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서글픈 추억들이 안개가 걷히듯 사라지고 기분이 맑았다. 뜻하지 않게 비슷한 배경에서 추억과 마주친 후의 기분은 그렇게 마음을 밝혀 주는 것일까.

좋은 사람들과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안개가 걷힌 푸른 바다와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새로운 추억을 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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