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 처하게 되면 그에 적응하기 위한 대응 행동을 나타낸다. 추우면 옷을 끼어 입고 싶어 하고, 배고프면 먹고 싶어 하고, 이성을 만나면 결혼하고 싶어 한다. 또한 사람들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항상 상대적 유형의 내적 욕구가 충돌하는 가운데 살아간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꾀를 부리고 싶은 마음, 자기 일에 만족한다고 하면서도 남을 부러워하는 마음, 거짓말하는 마음, 남에게 베풀면서도 아까워하는 마음, 이러한 마음들은 누구나 갖고 있으나 인격의 성숙도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가 날 뿐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사람은 자기 행동을 후회하면서 살아간다. 남과 싸우고는 양보 못했음을 후회한다.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잘해 주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부모에게 효도 못했음을 한탄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불완전한 미완성의 모습 그 자체에 사람다움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여럿이 모여 살아야 한다는 데에 있다. 사람을 하나의 개체로서만 볼 때에는 불완전한데에 사람다움이 있다고 해도, 사회적 동물인 이상 자기가 속한 사회 속에서 조화를 이룰 적에 더 사람다움이 있다고 할 수 있기에, 인격을 지속적으로 연마해 군상 속에서 삶의 조화를 추구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이 70에 이르러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보기에 거스름이 없게 됐다”라는 어느 선현의 말씀도 결국은 평생 수양을 거쳐서야 자연과 조화를 이뤘음을 의미하는 바, 사람이 사회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사람은 모태에서부터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사람다운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방법을 배우면서 살아간다. 배움 속에서 인격이 형성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배운 것을 여러 번 시도하다보면 습성화돼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나타난다. 예측지 못한 상황에 무의식적으로 대처하는 행동까지도 그 사람이 배운 결과다. 결국 배움이 인생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정상적으로 매일 세 끼 식사를 하며, 때로는 간식을 먹을 때도 있다. 먹지 않고는 육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육체적 성장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식사하는 노력을 본능적으로, 때로는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삶을 사람답게 하려고 매일 본능적·습관적으로 마음의 양식도 먹어야 할 것이다. 마음을 살찌우고 키울 때 사람다운 언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환경은 끊임없이 복잡하게 변화하므로 예측 불허다. 이러한 환경에 노출돼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남이 보기에도 거스름이 없는 언행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매일 식사하는 것과 같이 마음의 양식을 먹어 언행의 근원인 마음을 갈고닦아 순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들의 가르침이나 행적들과 같은 마음의 양식을 매일 먹는 것을 습관화해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아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