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엽 대령 공군본부·행정학 박사 전투조종사로서 공군 최북단의 기지에서 편대장으로 근무할 때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일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사건인 서울 올림픽 게임을 한창 준비하고 있던 시기였다. 국가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모든 군인이 최고의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외출, 휴가를 모두 반납한 상태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날도 비행대대에서 공중비상대기 임무를 위해 후배 조종사와 함께 비행준비를 했다. 나와 함께 비행하는 편대원이 비행 경력이 많지 않은 요기 조종사라서 여느 때보다도 더욱 세밀하게 상황별 조작 절차와 비상 시 행동요령을 설명했다.
날씨는 초가을의 화창한 하늘로 비행하기에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우리 편대는 각각 단기로 활주로를 이륙해 기지 북서쪽의 임무지역으로 향했다. 요기는 비행 브리핑 시 설명해 준 위치에서 잘 따라오고 있었다. 임무지역에 도착해 초계비행을 하면서 유사시 벌어질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갑자기 중앙통제소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급한 듯한 목소리의 관제사가 나에게 북쪽으로 방향을 틀고 최대의 속도로 가라는 지시를 했다. 내 위치에서 휴전선과의 거리는 약 60㎞! 북쪽에서 고속으로 내려오는 전투기가 휴전선을 침범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전투조종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휴전선 이남으로 북의 전투기를 내려오지 못하게 하라는 기본수칙을 알고 있었기에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요기 조종사에게는 지상에서 브리핑한 위치에서 나의 후방을 엄호하라고 지시했다. 요기 조종사의 부족한 비행 경험을 고려해 적과의 조우 시 초기에는 내가 모든 것을 처리하려고 했다. 모든 무장시스템을 즉시 발사 가능한 상태로 안전스위치를 풀고 북으로 향했다. 불과 1~2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수 년 동안의 비행훈련 과정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적과의 교전상황을 되뇌었다. 이제는 결전의 순간이다. 적기는 30여㎞까지 접근했으나 눈으로는 아직 적기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레이더상에서 적기의 위치를 확인하려 하고 있었다.
이때 관제소에서 우리 편대를 부르며 즉시 남쪽으로 선회해 남하하라는 지시가 나왔다. 적기가 북쪽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즉시 요기에 지시하며 동시에 남쪽으로 최대의 급선회를 했다. 휴전선에 근접비행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30여㎞의 거리는 고속비행 상태에서 1분 만에 접근할 수 있는 거리로 무장발사 직전의 거리이며 공중전투 기동을 시작하는 단계이므로 공중전이 벌어지기 바로 직전인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큰일로 진행이 되지는 않았지만, 기지로 귀환해 내 모습을 보니 조종복 전부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온몸에는 그때의 긴장과 열정이 한참이 지나도록 가시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위기와 긴장의 순간은 전투조종사이면 누구나 몇 번씩 경험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조종사의 땀과 열정이 조국의 하늘을 평화롭게 지켜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하늘을 바라보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을 후배 조종사들의 노고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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