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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두 중사 공군6탐색구조비행전대 | 새해가 밝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날, 가족들과의 화목한 식사자리에서 강도 7의 지진이 휩쓸고 간 아이티의 모습을 TV를 통해 보았다. 항공 구조사로 지난해 해외 긴급구호 교육을 이수한 나는 긴장된 상태로 바라보다 지원을 했고, 의료진과 행정지원 응급구조사인 나를 포함한 총 18명은 2차 파견팀으로 1월 20일 현지로 출국했다. 수심 가득한 얼굴의 아내와 천진하게 웃는 아들을 뒤로하고 새벽 버스에 오르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는 한 번에 3대의 예방주사를 맞고, 20시간이 넘는 비행과 9시간의 버스 이동 끝에 아이티 대한민국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시설이 없어 임시 진료소를 열어야 했고 장소는 베이스캠프에서 1km 떨어진 축구장으로 정했다. 천막과 책상을 설치하고 의약품을 정리하고 가이드라인을 쳐서 임시 진료소를 만들자 100여 명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주로 외상환자들이 많이 모여들었는데 살은 썩어 가고 상처에선 냄새가 진동했다. 의료서비스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 드레싱을 하고 상처 부위를 확인하고 딱지를 뜯어낼 때면 비명을 질렀다. 심지어 주사를 처음 맞아본 사람들도 많았다. 다음날 사람들은 배로 늘어났고 줄의 끝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발목에 붕대를 감은 한 아이는 두 번째 발가락이 잘려 있고 발바닥 중간까지 찢겨 있었다. 상처 부위를 만지자 고통에 기절했고 상처가 심각해서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주머니의 등에 업힌 영아의 경우 탈수에 폐렴을 동반,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혈관을 찾을 수 없어 주사기를 이용해 식도로 물을 조금씩 넘겨주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이들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많았더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간호사들은 그 모습에 눈물을 흘렸고 나는 가슴속으로 울었다. 우리 의료진 18명과 현지 KOICA 직원 22명이 나흘 동안 진료한 환자의 수는 무려 1332명, 서로 믿고 서로에게 힘을 실어 주었기에 가능했다. 재난 현장 속에서 함께 아파하며 한 명이라도 더 진료하기 위해 한마음으로 일했던 이번의 경험으로 생명을 구하는 구조사의 마음과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진정으로 깨닫고 임무에 더한 자긍심을 갖게 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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