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달(예 대령, 조간10기)
박 중위는 공군 제10전투 비행단 제102 전투비행대대 소속 전투기 조종사다. 제10전투 비행단은 1950년 6월 25일 전쟁발발 이후 1953년 7월 27일 휴전 때까지 수많은 출격으로 혁혁한 전공을 수없이 세워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조국 자유대한 민국을 수호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역사적으로 전통 있는 비행단이다. 그 휘하 제102 전투 비행대대는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 박 중위는 전통 있는 비행대대의 일원이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또한 탁월한 조종술을 인정받아 F-86F의 특수비행 팀의 멤버가 되어 국군의 날이면 “에어 쇼”에 참가하여 스릴 있고 박진감 넘치는 특수비행을 펼치는 조종사로서 그 자존심도 대단했다.
박 중위는 6.25를 서울에서 “S중학 2학년 때 맞았다. 경기여고에 다니던 누나와 함께 고향 평택에 내려갔으나 병원을 하는 아버지,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된 환자들이 있어 환자들을 두고 피난 갈 수가 없어 누나와 단둘이 피난길에 올랐다.
국도와 철도로는 위험하다하여 산길을 따라 5일간 남쪽으로 내려갔으나 이미 북한 인민군이 앞서 남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고향 평택으로 되돌아와야 만 했다. 멀리 평택이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에 앉아 쉬고 있을 때 인민군 쪽으로 보이는 6대의 탱크가 국도를 따라 뽀얗게 흙먼지를 날리며 남쪽으로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하늘에서 비행기 소리가 들리더니 남쪽에서 두 대의 비행기가 나타났다. (F-51, 무스탕) 비행기 소리를 들은 인민군 탱크들은 국도 주변에 있는 초가집으로 돌진하여 초가집을 엄폐물로 하여 숨었다. 그러나 두 대의 비행기는 정확히 6대의인민군 탱크를 찾아 공격하여 순식간에 모두 폭파시켜 불태워 버리고는 또 다른 목표물을 찾는 듯 북쪽으로 사라졌다.
아! 비행기가 큰일을 하는구나. 정말, 장하다. 이를 목격한 중학생 박 중위는 나라에 큰일을 하려면 공군 조종사가 되어야 하겠구나! 어떻게 하면 조종사가 되나하고..... 어린 박 중위는 마음속은 온통 전투기 조종사의 꿈에 사로 잡혔다.
그 후 휴전이 되고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된 박 중위는 아버지, 어머니
의 간곡한 부탁으로 가업을 이어받을 의사가 되기 위해 서울 “S” 의대에 원서를 제출, 응시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그러나 박 중위는 평생 家內 병원에서 환자들과 일생을 같이하는 초라한 아버지 모습이 훗날 자기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평택 집에만 가면 머리가 아프고 고민이 생겼다. 그러나 함께 “S의대에 입학한 아름다운 여자친구 ”K양이 있어 커다란 위안이 되어 열심히 공부했다. 의대 예과 2년생이던 박 중위는 어느날 “K양과 함께 단성사에서 상영하는 영화 제7함대를 관람하였다. 미7함대 소속 항공모함에서 힘찬 이ㆍ착륙을 하면서 작전 수행중인 용감한 전투기 조종사가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하숙집에 돌아온 의대생 박 중위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또 다시 전투기 조종사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의예과 2학년을 마치고 본과 1년에 재학 중이던 박 중위는 어느 날 “k”양이 가져온 신문에 공군조종간부 모집이란 광고를 보고 결심을 한 후, 응시하여 합격 하였다. 그리고 부모님을 설득하고 입대하여 어렵고 혹독한 비행 훈련을 거쳐 3년이 지나 흰 가운이 의학도에 일약 씩씩하고 늠름한 전투기 조종사 공군 소위로 임ㆍ관 빨간 마후라로 변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102 전투비행대대에 배속을 받아 최첨단 제트 전투기인 F-86F를 조종하면서 숙련(qualifying)조종사의 훈련을 마쳐 2기 편대의 편대장 자격과 함께 공군 중위로 승진하여 만 5년 만에 명실 공히 하늘의 독수리가 되었다. 비로써 소년시절의 꿈이 이루어져 조국을 위해 큰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다.
유사시 하늘에 적의 전투기, 폭격기, 모든 비행기, 바다에 적의 함대, 수송선 모든 선박, 육지에 적의 비행장, 레이더 기지, 시가지, 댐, 탱크, 교량, 기차, 차량등 모든 적의 시설물을 부시고 불태울 수 있는 능력 있는 전투기 조종사가 된 것이다. 박 중위의 시대는 1960년대 전 세계가 미국과 소련의 양 대립으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두 갈래로 갈라져 냉전시대를 맞고 있었다.
미ㆍ소는 서로 간 세계를 장악하기 위하여 보다 위력이 큰 핵폭탄 발명, 더 많은 핵폭탄 및 ICBM(대륙간 탄도 유도탄) 보유, 그리고 유사시 선제공격을 위한 거점 확보 등 하루가 다르게 전쟁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소련 땅에 비밀리에 정보정찰 비행하던 미국의 U-2기가 소련의 지대 공 미사일에 의해 피격, 미 공군 장거리 폭격기 들이 핵폭탄을 탑재하고 소련 땅과 인접한 알라스카 상공에서 24시간 체공 공중감시, 미 해군의 핵탄두 미사일을 탑재한 폴라리스 잠수함이 소련 근해 상주항해. 소련은 이에 질세라 미국 본토 바로 앞인 쿠바와 손잡고 쿠바에 핵탄두 미사일 기지 건설추진, 미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대서양에 향해 중인 모든 소련 선박을 강제 정선시켜 강제 무기 탐색을 감행함으로서 전쟁 발발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간 사건들이 그 예다.
또한, 한반도에서도 미 공군 RC정찰기가 북한공군 전투기에 의해 피격, 우리해군 전투함이 북한군 해안포에 의해 피격, 미 해군 푸에폴로 첨보함이 북한해군 전투함에 의해 원산항에 나포, 울진ㆍ삼척 간첩 침투 사건 등 크고 작은 사건은 언제 또 다시 제2의 6.25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 연속되었다.
더구나 북한은 6.25 전쟁 당시 제공권을 UN군에 빼앗겨 북한 내 모든 시설이 UN군 항공기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되어 북한 전역이 폐허가 된 상태에서 휴전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휴전 이후 북한 김일성은 제공권을 빼앗긴 것이 한 이 되었는지 또한 현대전에서는 우세한 항공력 없이는 전쟁을 이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인지 제일먼저 비행장 재건과 새로운 비행장을 신설하였고 그리고 소련에서 많은 수의 항공기를 지원받아 남한 두배의 비행장과 두 배의 항공 전투력을 보유하고서는 맹훈련을 하면서 때로는 남한을 기습 공격하려는 듯 여러 대의 전투기가 편대를 지어 최대의 속도로 기수를 서울 방향으로 향하여 돌진해 오다가 DMZ 상공 직전에 급선회를 하여 돌아가는 위협적인 비행을 일삼곤 했다. 그래서 우리 공군은 유사시 북한 공군의 선재 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비행장 활주로 끝에 5분대기의 전투기 편조를 구성, 24시간 긴급 발진 할 수 있도록 비상대기(alert room)체제를 운영했다. 언제 어디서든 적의 수상한 항적이 있으면 우리 공군 전투기를 5분 이내 발진 시켜 대응케 한다는 것이다.
시국의 흐름에 따라 박 중위의 생활도 분주했다. 주말에는 주로 5분 대기의 비상대기조에 편성되어 비상대기실에 대기해야 했고 주중에는 하루 1~2회의 비행훈련에 임했으며 일과 시간 이후에도 1시간 이내에 비상 출동이 가능한 곳에 머물러 있어야 함으로 항상 긴장된 상태에서 생활했다.
박 중위의 여자친구 “k양도 그동안 의대를 졸업하고 모교인 S”의대병원에서 산부인과 인턴과정을 거쳐 레지던트 과정에 들어가 산부인과 신생아 분만실에 근무했다. 박 중위와 K양은 고등학교 시절 서울 명동성당에서 처음 만났다.
청소년 자원 봉사자로 지원하여 일요일하면 성당에 모여 같이 봉사활등을 했고, “K양은 키가 크고 유난히 잘생긴 고교생 박 중위를 처음 보았을 때 친한 친구가 되어 오래도록 같이 지내고 싶어 했다.
서울에서 무역업을 하는 “K양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된 K양을 미국에 유학을 보내 경영학을 전공시키려 했으나 K양은 친구인 박 중위가 좋아 같이 의대에 지망한 것이다.
박 중위와 “K양은 서로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자주 만나지 못했다. ”K양은 야근 다음날 쉬는 날을 택하여 박 중위를 면회 가곤했다. 면회를 가면 주로 영내 아니면 영외 조종사 숙소에서 만났다. 영내에서는 미 공군 장교 클럽에서 식사하곤 했으며, 영외에서는 수원시 외곽에 자리 잡은 풀장이 있고 부대시설이 잘 갖추어진 아담하고 별장 같은 조종사 숙소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그 동안 서로 있었던 일 들을 이야기 했다.
그러나 통행금지 시간이 있어 저녁 8시이면 서울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타야하기 때문에 만나는 시간이 짧아 아쉽기만 했다.
박 중위는 애국심이 강하고 정의롭고 예의바르고 다정다감하며 모든 면이 잘 갖추어진 세련된 영국 신사다운 장교가 되어있었고, 또한 제트 전투기 조종사의 기풍이 품겨져 빨간 마후라와 조종 복이 잘 어울려 “K양은 박 중위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서로 같이 있을 땐 서로가 행복감을 느꼈으며 친한 친구에서 이성으로 변해 감을 느꼈고 박 중위를 면회 갈 때 장미꽃을 사가지고 가고 싶어 언제부터인가 붉은 장미꽃을 가져가게 되었다. 두 사람은 우정에서 사랑으로 변해있었다.
박 중위의 비행훈련 과목은 다양했지만 그 중에서도 한미 공군이 합동으로 하는 훈련이 규모가 크고 가장 중요한 훈련이었다. 1년 중 몇 차례로 나뉘어 하는 한미공군합동방공 훈련도 여기에 속한다. 방공훈련(Air Defence Exercise)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 영공을 방어하는 훈련이다. 박 중위는 내일부터 시작되는 방공훈련에 2기 편대의 편대장으로서 5분대기의 긴급발진 조에 스케줄이 되어 있어 작전 상황실에서 오후 늦게까지 브리핑을 받았다.
미 공군 전투기들이 가상 적기가 되어 일본 본토 및 오키나와 미공군기지에서 이륙하여 대한민국 영공을 비밀리에 침투한다는 것이다. 우리공군의 레이더 사이트에서 이를 포착하여 우리공군 전투기로 하여금 출격시켜 가상적기와 대응케 한다는 작전 브리핑이었다. 저녁 늦게 숙소에 돌아온 박 중위는 서울에서 “K양이 면회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음을 알았다. 침대 위에 장미꽃과 편지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편지 내용은 박 중위를 면회 왔을 때 마다 매번 후한 대접을 받아 그 답으로 다음차례는 K양이 대접하겠노라는 내용이었고 서울 H호텔에 돌아오는 일요일 12시에 의미 예약되었으며 초청 범위는 박 중위와 K양의 친한 친구들로 15명 정도이며 박 중위를 위한 환영 파티이니 꼭 시간을 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박 중위는 내일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출동해야 하므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월 중순의 겨울 칼바람은 살을 에이는 듯 차가왔다. 하늘엔 아직 별이 총총 빛나는 이른 새벽 박 중위보다 앞선 5분대기의 F-86F 편대가 작전 명령을 하달 받아 지축을 울리며 출격하기 시작했고 박 중위도 8번째의 작전 명령을 받아 숙련훈련 과정에 있는 박 소위를 요기로 하여 출격했다. 이륙직후 스크렌 턴(Scranton, 지상 레이더 사이트 호출부호)을 불러 Blue Dragon Tango 편대(이하 탱고편대)가 이륙했음을 알려주었고 스크랜 턴 레이더 관제사(이하 레이더 관제사)는 탱고 편대는 기수를 90도로 하여 최대 출력으로 3만 6천 피트까지 상승하라는 요구를 했다. 박 중위는 응답하고 기수를 90도로 선회하여 최대 출력으로 상승했다. 90도이면 동쪽으로 가는 것이다. 고도 3만 6천 피트에 도달하고 수 분이 지나 멀리 독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독도는 겨울 내 내린 눈에 덥혀 마치 우뚝 솟은 거대한 빙산 같이 보였고 멀리 동쪽 수평선에서 큰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여 동해바다는 이제 막 일출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얀 빙산으로 보이던 독도는 떠오르는 붉은 태양 빛을 받아 붉은 빙산으로 변하여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멀리 동해안 내륙에도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모닝 캄, 조용한 아침의 나라, 밝은 태양이 떠오르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내려다보니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나의조국, 대한민국이여, 영원하여라. 그리고 우리는 혼신을 다해 그대를 영원토록 지켜 주리라. 다시 레이더 관제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독도 동쪽 25마일 상공에 가상적기 항적이 포착되었으며 한국방공 식별구역(Korea Air Defence Identification Zone)을 침범하려하고 있으니 주지해 달라는 요구를 했었고 박 중위는 독도를 지나면서 전방을 주시했다. 멀리 11시 방향 하방에 작은 점 하나가 비행운을 뿜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박 중위는 4 G가 걸리는 (자기 중력의 4배) 좌측 급선회의 기동으로 가상적기의 후방에 위치하면서 꼬리를 물고는 사격 사거리 내에서 공대공 미사일 발사와 6문의 기관포 사격을 가상으로 실시한 후 가상적기에 편대비행 위치까지 접근하여 그 기종과 기종에 적힌 호수 5자리 일련번호를 레이더관제사에게 보고했다. 이 고유 번호가 바로 가상적기를 격추시켰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수도 서울을 폭격 하려 가던 가상 적기였다. 기종은 미공군기 F-80이였고. 망망대해 상공에서 적군이 아닌 우방국 전투기가 서로 외롭게 만난 것이다. 친한 친구를 만난 듯 서로가 반가워 엄지손가락을 쳐들어 보이면서 ‘잘했다’, ‘수고했다’는 위로의 뜻이 담긴 수신호를 교환했다.
박 중위는 가상 적기를 이탈하면서 레이더 관제사에게 적기를 격추했다는 임무완료 보고를 하고 귀대하기 위해 기수를 내륙 쪽으로 향하여 비행하고 있었다. 이때 레이더 관제사로부터 탱고편대를 부르고 있으므로 박 중위가 응답하자 포항동쪽 40마일 상공에 또 다른 가상적기 항적이 포착되었고 포항제철 및 울산 정유 공장을 폭격하려 하고 있으나 근처에 아군 전투기가 없으니 탱고편대가 한 번 더 요격 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박 중위는 연료가 염려되어 잔량 연료를 체크하고 다소 여유가 있어 요격하겠다는 응답을 했다.
레이더 관제사의 유도에 따라 가상 적기를 포항 동쪽 20마일 상공에서 발견하여 전과 같은 요령으로 공격하고 귀항 길에 올랐다. 오늘 새벽 박 중위는 대한민국 영공을 몰래 침투한 가상 적기들을 놓치지 않고 조기 발견하여 격추시킴으로서 유사시 국가와 국가의 막대한 재산을 보호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또한 전쟁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짜릿한 승리감으로 요기인 박 소위를 내려 다 보았다. 박 소위도 임무 성공에 신이 났는지 연신 동그라미 수신호를 했다. 만사 OK라는 뜻이며 임무를 100%이상 수행한 것이 기쁘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 작전사령부에서 Gard Channel로 전 항공기 귀대하라는 다급한 Weather Recall 방송이 들려왔다. 서해안 쪽에서 한파가 밀려와 전국적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고 모든 임무를 중지하고 즉시 귀대하라는 지시였다.
박 중위는 서둘러 ADF 및 GCA(악천후 시 항고기 착륙을 위해 설정된 시설)의 유도 착륙을 하기위해 오산 S.W Radio Beacon High Station에 도달했으나 오산 Approach Control 관제사는 3만 피트 상공에서 Holding(대기)하라고 했다.
통상 2만 1.2천 피트에서 Holding 하는데 3만 피트면 무척 많은 전투기들이 Weather Recall 인해 한꺼번에 몰려 악천후 시 착륙 절차를 따라 착륙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2만 피트에서 시작하여 3만 피트까지 매 1,000피트마다 두 대의 전투기가 층층이 대기하고 있다고 가산하면 3만 피트까지는 10개 편대가 적어도 20대의 전투기가 대기 중에 있다는 것이다. 5분 간격으로 오산, 수원 비행장에 나뉘어 착륙한다 하더라도 50분 후에 탱고 편대가 착륙을 하기위해 2만 피트에서 강하하기 시작한다는 계산이 나오므로 박 중위는 오래 기다림에서 연료부족이 염려되어 기상 상태가 좋은 예비 비행장(alternate)를 선택해 보려고 오산 관제사를 통해 군산, 대구 공군기기지의 현재 기상 현황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눈이 내리고 있다고 하여 예비 비행장 선택을 포기하기로 했다. 탱고편대는 마지막 착륙을 기다리는 편대가 되었고 3만 피트에서 차례로 2만 피트까지 내려오는데 많은 시간과 연료가 소모되었다. 탱고편대는 순차에 따라 오산 미 공군비행장에 착륙하게 되었고 남은 연료로는 착륙을 실패하면 두 번 착륙 시도엔 부족한 연료였다. 차례가 되어 탱고편대는 2만 피트에서 강하하기 시작하여 1만 5천 피트에서 구름 속으로 들어갔고 4천 피트에서부터 오산 GCA(Ground Control Approach)레이더에 포착되어 관제사의 착륙유도를 받았다.
관제사의 유도에 따라 2천 피트에 도달했을 때 더 심한 깜깜한 구름속이 되었고 눈은 폭설로 변하여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었다.
박 중위는 요기인 박 소위가 염려되어 내려 다 보았다. 비행기의 날개와 날개 사이가 겹칠 정도로 바싹 붙은 편대 비행을 하고 있었다. 이때 오산 GCA관제사의 다급한 목소리로 탱고편대가 심한 눈구름으로 인하여 GCA 레이더 상에서 항적이 보이지 않아 현재 Missing(잃어버림) 상태라고 했고 좌 선회를 해 달라, 우 선회를 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항적을 다시 찾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착륙유도 를 하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박 중위는 이 절박한 시기에 촉각을 다투는 찰나에 레이더에서 잃어버리다니 어이가 없고 눈앞이 캄캄해 옴을 느꼈다. 요기 박 소위를 내려 다 보았다. 요기가 없어졌다. 심한 눈 때문에 더 이상 편대 비행을 유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것이다. 아! 절망이다. 박 소위는 어떻게 되었을까 순간 요기를 잃어버린 편대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박 중위는 더 이상 캄캄한 눈 구름속이 싫어졌다. 의지할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만을 믿어야 한다고 느껴졌다. ‘구름속에서 더 지체하지 말고 내 눈으로 직접 비행장을 찾아보자’. 박 중위는 엔진 출력을 높여 상승하기 시작하여 1만 5천 피트에서 구름을 뚫고 나가 구름 위를 비행하면서 육지를 찾기 시작했다. 육지가 보이면 구름 사이로 내려가 비행장을 찾아 착륙한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육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망망한 구름 위를 홀로 나르고 있었다. 다만, 자신이 탄 전투기의 그림자에 해 무지개가 동그라니 아름답게 만들어져 따라오고 있었다. 구름이 원망스러웠다. 조금 전까지도 폭설을 만들어 착륙을 방해 하더니 이젠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어 따라오게 하다니...... 박중위는 고독감을 느꼈다. 부대 상사 그리고 부모, 형제 및 “K양 얼굴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져 갔다.
지구가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지구를 떠나라는 말인가! 아니면 비행기를 버리고 Bail Out(낙하산 탈출)해야 한단 말인가. 엔진이 살아있는 멀쩡한 비행기를 버리다니.... 그러나 연료 잔량 계기침은 이미 “0”에 닿아 있었다. 비행기 엔진이 꺼져 Bail Out 하면 비행기는 어디에 떨어질까. 시가지에 떨어지면 수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박 중위는 비행기 엔진이 꺼지면 Bail Out하기로 결심하고 기수를 270도로 선회했다. 서해 바다쪽으로 향하자. Bail Out 이후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하게 하자. 이때 탱고편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응답하자 수원 공군 GCA레이더에 박 중위의 비행기가 포착되었다고 했고, 기수를 310도로 하여 강하하라고 했다. 박 중위는 너무나 반가웠다. 310도라면 평소 이ㆍ착륙을 하던 수원비행장 활주로 방향이 310도이기 때문이다. 박 중위는 우측선회를 하여 310도에다 기수를 맞추고는 강하하기 시작했다. 1만 5천 피트에서 다시 캄캄한 눈구름 속으로 들어갔고 얼마 후 소리없이 비행기 엔진이 꺼졌다. 연료가 다 소모된 것이다. 박 중위는 엔진이 꺼진 것을 알려주기 위해 수원 GCA를 여러 번 불렀으나 응답이 없었다.
이젠 모기지인 비행장과 수원시가지 상공에 접근하였으므로 아무 곳에서나 함부로 Bail Out 할 수 없게 되었다. Bail Out 이후 비행기 추락지역이 대형사고의 위험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박 중위는 다시 수원 GCA에서 불러 줄 것을 기대하면서 계속 강하했다. 그러나 비행기 엔진이 꺼지면서 전원이 꺼져 통신이 두절된 것을 박 중위는 몰랐다. 계속 310도를 유지하여 내려가자 그러면 나의 생명선이 활주로가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따라 주지 않았다. 박 중위의 F-86F 전투기는 수원 비행장을 훨씬 지나 멀리 안양 근교 관악산 정상 큰 바위에 충돌하여 폭발하고 말았다.
비행기는 바위에 충돌하면서 산산조각이 되어 사방에 흩어졌으며 충돌 순간 충격으로 인해 박 중위는 좌석과 함께 튕겨나가 좌석이 분리되면서 낙하산이 자동으로 Open(펴짐) 되기 전에 땅에 떨어졌다. 이로서 26세의 젊은 나이에 산화하여 어떤 젊은 조종사의 일생이 끝났다. 눈은 계속 내려 박 중위는 눈 무덤이 만들어져 눈속에 묻혔다.
대 자연의 재해인 폭설 앞에 인간의 힘은 너무나 미약했던가!
한편, 요기인 박 소위는 폭설로 인해 더 이상 편대 비행을 유지할 수가 없어 편대장 박 중위를 잃어버리고는 외톨이가 되어 육안으로 비행장을 찾기 시작했고 위험을 무릎 쓰고 고도를 낮추어 6백 피트까지 내려갔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밑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어떤 섬광이 스쳐 감을 느꼈고 섬광이 스쳐간 방향을 주시했다. 다시 섬광이 스쳐갔다. 자세히 보니 비행장에 있는 등대, 즉 Rotating light (불빛이 돌아가는)의 불빛이었고 그 옆에 활주로의 유도등을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박 소위는 좌 선회를 하여 바퀴를 내리고 곧 바로 착륙을 시도하여 무사히 눈 덮 힌 오산 미 공군 비행장에 기적적으로 착륙에 성공했다. 활주로 2/3 지점에서 비행기는 더 가지 못했다. 연료가 다 소모되어 엔진이 꺼진 것이다.
당시 오산 비행장은 폭설로 활주로에 많은 눈이 쌓였고 또한 시정이 비행장 제한치(blow minimum)이하가 되어 오산비행장을 Close(폐쇄) 한다는 NOTAM(항공정보) 전문을 내 보낸 이후였다. 오산 타워에서는 예고 없이 전투기 한 대가 착륙하여 활주로 2/3 지점에서 정지 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항공기 사고 구조반에 연락했고 사고 구조반이 전투기에 가서 보니 젊은 한국 조종사가 좌석에 그대로 앉아 울고 있었다.
박 소위는 생과 사의 아슬아슬한 갈림길에서 살아남아 긴장이 풀려 온몸에 힘이 빠져 꼼짝할 수가 없었고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진 것이다. 박 소위는 미 공군 구조팀의 부축을 받아 엠블란스에 실려 미 공군기지 병원에 가서 진정제인 위스키를 몇 잔 마시고 잠이 들었다. (박 소위는 후에 중령으로 예편하여 대한항공 잠보기(747)기장이 되어 태극기를 달고 세계를 누비며 오래도록 국위 선양했다.)
그리고 서울 “S의대 병원 산부인과 신생아 분만실에 근무하는 K양은 밤새 진통이 심해 위험한 산모를 제왕절개 수술로 신생아 남아를 탄생시키고 피곤한 몸으로 휴게실로 나와 커피를 마시면서 창밖에 소리 없이 내리는 함박눈을 보고 있을 때 간호원이 와서 연구실에 전화가 왔다고 해서 가서 받았다. 박 중위의 동기생인 홍 중위의 목소리였다. K양이 수원에 가면 열심히 인사하는 홍 중위였다.
박 중위가 오늘 아침 비행사고로 순직했다고 했고, 모래 수원 비행장에서 장례식이 있다고 했다. K양은 홍 중의 말을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말해 달라고 했고 홍 중위도 말을 흐리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 하느님도 무심하셔라. 밤새 고생하면서 새 생명을 탄생시켰는데, 나에게 가장 소중한 박 중위의 생명을 빼앗아 가시다니.....
“K양은 박 중위를 처음 만난 명동성당을 찾아가 함박눈이 내리는 성모 마리아님 앞에서 목 놓아 섧게 섧게 울었다. 젊은 박 중위가 너무나 아깝고 불쌍해서였다. 이틀 뒤, 수원공군 기지에서 고 박 대위(일 계급 특진)장례식에 장미꽃을 가져가 영정에 바치면서 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일요일 서울 “H호텔 12시 박 중위 환영식에 모인 친구들이 박 중위가 순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슬픔에 잠겨 울음바다로 변했었다.
지금도 해마다 6월이 되면 서울 동작동 현충원에 있는 고 박 대위의 무덤에는 어김없이 붉은 장미꽃이 놓여 져 외롭지 않다.
위의 글은 조국 영공을 수호하다 순직한 전투기 조종사 고 박 수병 대위의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기술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