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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지리산 천왕봉을 오랜 망설임 끝에 올랐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주친 ‘백두대간’이라는 단어가 6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배낭 속의 짐처럼 항상 함께 짊어지고 가야 했던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한 불안감, 산행 중 혼자만 감당해야 할 불확실성에 대한 부담감을 극복하기 위해 나 자신과 끝없는 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그리고 지난 6월, 마침내 감격 속에 종착점인 진부령에 도착하자 그동안 힘들었던 많은 순간들이 기쁨이 되고 보람이 되고 아쉬움이 되고 그리움이 돼 가슴속에서 요동쳤다.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뒤돌아보니 나도 모르게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외형적으로는 한두 시간의 산행도 힘들어하던 초보가 하루 열 시간이 넘는 산행도 거뜬히 소화할 만큼 강한 ‘산 전사’(?)가 돼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땅에 대한 지리 인식이 바뀐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그저 내 머릿속에서 뿔뿔이 나눠져 있던 산봉우리들이 어느덧 하나로 이어져 강줄기가 흐르듯 하나의 산줄기가 돼 흘러내리고 있었다.산줄기는 물을 건너지 않고 산이 곧 물을 나눈다는 우리의 전통적 지리 인식 개념인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확고한 원리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물은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산골짜기에서 시작한 작은 물줄기가 모여 시내를 이루고, 다시 그 시내가 개울로 커지면서 큰 강을 이루고, 종국에는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그리고 인간은 그 물가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역사를 이룬다.우리 땅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에서 13개의 정맥(正脈)과 한 개의 정간(正幹)이 뻗어 나가면서 10개의 큰 강에 물을 대는 울타리가 되고 있다.
이 땅의 모든 산줄기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단절 없이 하나의 큰 흐름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며, 이 울타리가 고구려도 되고 백제도 되고 신라도 되며, 영남과 호남이 돼 각기 다른 언어와 풍습과 역사를 이어가는 경계가 됐으니 백두대간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시작이 아닐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일제가 우리 산줄기 곳곳에 수많은 쇠말뚝을 박았던 것도 산줄기의 흐름에 대한 시기와 저주를 통해 우리의 도도한 역사 흐름을 부서진 파편으로 만들어 버리고자 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므로 내게 있어 백두대간을 이해하는 것은 지리 인식의 변화를 통해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의식을 회복할 수 있는 전환점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그간 백두대간의 마루금 위에서 오랜 시간 땀 흘리며 온몸으로 깨달은 가장 귀중한 교훈이라는 생각이다.단재 신채호 선생이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백두대간을 온전히 회복하는 것은 우리 역사에서 ‘비아’를 축출하고 ‘아’를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김창환 대령 공군전투발전단> [ 2009년 07월 30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