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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조종사의 날(진 성훈) 조회수 8030
작성자 4 작성일 2009.06.30
아이들을 데리고 가끔씩 찾는 전쟁기념관 야외에는 비행기와 전차 등 다양한 실물 무기체계가 전시돼 있다 낡은 항공기 사이를 걷다 보면 다소 왜소한 몸체를 가진 프로펠러 전투기 한 대와 마주친다. ‘F-51 전투기’다. 1940년 미국에서 생산한 전투기.야생마(MUSTANG)라는 애칭. 설명문은 이어 “한국군은 1950년 7월 2일 최초로 도입했다. 53년 휴전 때까지 지상군 항공지원 작전 임무를 수행했으며 총 8495회 출격했다”고 적고 있다. 전쟁 발발 당시 한국 공군에는 전투기가 없었다. 연락기인 L-5와 L-4, 훈련기인 T-6(건국기)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공군은 연락기와 훈련기를 전투기로 썼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야 했다. 후방석에 앉은 조종사가 수류탄을 던졌다. 포탄도 던졌다. 그러다가 들어온 공군의 첫 전투기가 F-51 머스탱이다. 1950년 7월 2일. 공군의 조종사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주일 미군이 운용하던 F-51 전투기 10대를 인수해 직접 이를 몰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제대로 F-51 조종 훈련을 했을 리 만무했다.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막 기종전환 훈련을 받은 지 2, 3일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몇 개월씩 훈련만 받을 수도 없었다. 바로 다음날인 7월 3일, 이들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근석 장군이 이때 등장한다. 이 장군은 전쟁 발발 당시 대령으로 조종사 9명을 인솔해 일본에서 F-51 전투기 10대를 인수해 대구기지에 도착했다. 다음날 직접 편대를 지휘해 출격에 나서 적의 연료 보급소·차량 등을 파괴했으나 다음날인 7월 4일 안양 상공에서 적 전차와 차량 행렬을 목표로 급강하 공격을 하던 중 적 대공포에 맞아 귀환이 불가능해지자 애기와 함께 적 탱크에 자폭해 산화했다고 전해진다. F-51과 마지막을 함께한 조종사가 이 장군만은 아니었다. 손으로 수류탄을 떨어뜨리던 다른 항공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전쟁 기간 공군 64명의 조종사 중 27명이 전사했다. 전체 조종사 중 40%가 전사했던 전쟁. 이 나라의 하늘은 그렇게 지켜졌다. 7월 3일, 공군의 첫 전투기가 적진을 향해 첫 출격한 그날을 기념해 지난해 처음으로 ‘조종사의 날’이 만들어졌다. 앙드레 김 선생이 직접 디자인한 ‘빨간 마후라’가 전달된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많은 공군인에게는 이날이 제정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중요했다. 다시 그날이 온다. 이제 더 이상 손으로 수류탄을 던져야 하는 서글픔은 없다. 사거리 수백km의 공대지 미사일이 달렸고, 첨단 조종장치가 조종사를 돕는다.이렇게 사정이 달라진 게 많지만 그래도 달라지지 않는 게 있다. 조종사들의 정신이다.1950년 7월 처음 도입한 F-51 전투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신념(信念)의 조인(鳥人)’. F-51을 인도한 미군 딘 헤스 소령이 몰던 전투기에 적혀 있던 ‘By Faith, I Fly(나는 신념으로 난다)’를 참조한 것이라지만 영어보다 훨씬 정이 간다. 오늘도 특별한 ‘신념’으로 ‘조인’의 길을 걷는 그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진성훈 한국일보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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