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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바티칸에서 본 고 김수환 추기경 조회수 10688
작성자 4 작성일 2009.03.09
지난 2월 후반은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추모열기가 국내 매스컴을 주도했다. 그분의 선종은 한 종교지도자로서의 서거뿐만 아니라 온 국민의 추앙을 받아 온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의 상실이었음을 증명해 줬다.무려 45만 명의 조문객과 전 국민의 각별한 애도는 무엇보다 사회의 약자와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정의와 민주화에 앞장섰고, 신체의 일부를 바치면서까지 사랑을 몸소 실천한 것이 국민들을 감동시킨 때문인 것 같다. 요즈음처럼 분열된 사회의 갈등 속에서 그분의 조문행사를 통해 모처럼 일치된 국민 애도 분위기를 볼 수 있었다.필자는 다행히도 군 예편 후 3년간 바티칸(교황청)의 전권대사로 보임을 받아 로마를 방문하는 김 추기경님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특히 재임기간 중 2000년은 대희년(대사면의 25년 주기로서 천 년 주기에 해당하는 시기)의 해로 세계 기독교의 최대 축제 시기였기에 교황청의 많은 공식행사와 시노드(주교회의)에서 그분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주어졌다. 그분은 고결한 신앙심 위에 겸손과 합리적 논리의 성직자로 보였다. 부임 차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 신임장을 제정 시 교황을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의 첫 화두는 김 추경님의 안부로부터 시작될 정도로 교황의 신임과 영향력이 크신 분이었다. 그 이유는 추기경님께서 외국어에 능통해 교황님과 서로 자주 대화를 갖는 각별한 친분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1984년 방한해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과 103위 시성식을 여의도 광장에서 개최한 바 있었다. 또 교황께서는 1989년 재방한해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개최한 것은 교황의 바쁜 일정상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 당시 교황께서는 한국교회의 발전에 감화를 받아 김 추기경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때문이었다.공관장 재임 기간 중 2000년 대희년의 로마는 교황청을 방문하는 외국 국빈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당시 우리나라 처음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교황청 방문이 있었다. 필자는 군에서 배운 모든 노력의 결실로 교황청에서는 영국여왕에게도 베풀지 않았던 국빈 방문의 최고예우를 우리 대통령에게 부여함으로써 우리 외교부를 놀라게 했다.추기경님은 미사 마침예식에서 오른손으로 세 번 십자 표시를 하면서 신자들에게 강복을 하는데 그 마지막 세 번째 십자 표시를 북한동포를 마음에 품으며 그었다고 전해 들었다. 교황청의 공식행사 참석차 로마 방문 시에는 대사관저의 성직자와 교민들의 만찬 장소에서 추기경께서는 특유의 논리적 달변과 위트로 좌중을 즐겁게 했다.한번은 도울 김용욱 선생과의 인터뷰 내용을 대사관 직원과 교민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었다. “기독교의 인간관은 하느님과 일치가 되는 것이 목표인데 이런 점에서 공자의 천인합일 사상과 연관이 되며, 이를 끝까지 지켜야 할 원리가 사랑이며, 이 사랑이 바로 유교의 인(仁)의 정신”임을 강조하며 종교 간의 대화와 인간존중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 노령의 성직자로 동양사상의 구성적인 이해와 신앙의 문제를 통괄하는 설명에서도 그분에 대한 존경심은 끝이 없다.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울 줄 알고, 양심적으로 살아야 해요. 그걸 실천하는 게 괜찮은 삶 아니겠는가.” 그분의 어록을 재음미해 본다. <배양일 (예)공군중장 연세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ambagenbae@hanmail.net> [ 2009년 03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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