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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국 총사령관 아이젠하워 장군이 지휘하는 미영 연합군이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하고 파리 입성이 가까울 무렵 콜티츠(Dietrich von Choltitz)는 파리 주둔 독일점령군 사령관이었다.
그는 대소전(對蘇戰)에 참가, 세바스토폴 전투 승리로 1942년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1944 이탈리아 전투에서 승리하고 8월 7일 대장으로 승진하면서 파리 주둔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짧은 사령관 재임 시절 역사적인 파리를 구한 것이다. 패전을 눈앞에 둔 히틀러는 프랑스의 자존심인 파리를 초토화하려고 “파리에서 후퇴할 때 도시의 모든 기념물과 주요 건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폭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총통의 명령을 받은 콜티츠 사령관은 고뇌와 번민에 빠졌다. 이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파리, 우리 후손들이 길이길이 지켜 볼 역사의 유산을 파괴할 것인가 고민했다.
총통의 명령을 수행하는 충직한 군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명령불복종의 반역자가 될 것인가.그는 결단을 내렸다. 비록 히틀러의 명령을 거부한 나치 독일의 반역자가 될지언정 인류 역사에서 파리를 파괴한 괴물(?)로 기록되기를 원치 않았다. 1944년 8월 23일 마지막으로 히틀러가 직접 전화를 걸어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불타고 있다고 허위보고했다.
이리하여 세계적 유산인 파리 모습을 오늘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를 ‘파리의 구원자(Savior of Paris)’로 칭송하고 있다. 그의 숭고한 역사의식과 세계관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나는 여기서 우리 공군의 김영환(金英煥) 장군을 추모한다. 콜티츠 사령관 못지않은 위대한 업적을 인류 문화사에 남겼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동안 우리 공군조종사들은 T-6 훈련기와 F-51 머스탱 전투기로 8600여 쏘티를 출격해 공산군을 격퇴하고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 이때 하마터면 합천 해인사가 소실될 뻔했으나 김장군의 결단으로 이를 면한 것이다.경기고등학교와 일본 관서대학을 졸업한 김장군은 1948년 입대해 공군 창설의 산파역으로 6·25전쟁 때 많은 공을 세워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강릉전진기지 사령관과 제10전투비행단의 초대 단장을 역임했으나 애석하게도 34세를 일기로 순직했다. 그는 1951년 8월 중순 인민군들이 가야산의 해인사로 이동했을 때 당시 작전권을 가진 미 공군으로부터 폭격 명령을 받았다.그러나 천년 고찰 우리 국보인 팔만대장경이 보존된 해인사를 폭격할 수 없었다. 영화 ‘빨간 마후라’의 주인공이기도 한 김영환 장군은 작전 명령을 어기면서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기로 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우리 국보인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이 보존된 것이다. 불교계에서는 2002년 해인사에 ‘김영환 장군 팔만대장경수호 공적비’를 세웠다.전쟁은 인류 역사와 함께 존재해 왔지만 위대한 인류 문화유산은 역사의식을 가진 훌륭한 영웅들에 의해 보존돼 왔음을 교훈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명상 전 공군대학 총장·인하대 객원교수 국제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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