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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 ….” 이는 공군의 대표적 군가 ‘빨간 마후라’의 첫 소절이다. 영화 주제가이며 한때 온 국민이 애창한 이 노래 가사처럼 ‘빨간 마후라’는 대한민국 공군조종사의 상징이다.한국 공군의 ‘빨간 마후라’ 전통은 6·25전쟁 때 시작됐다.
전쟁 당시 ‘빨간 마후라’는 전투조종사들에게 뜨거운 정열과 불굴의 사명감, 그리고 필승의 신념을 고취하는 정체성 확립의 촉매제였다. 조종사들은 임무를 완수하고야 말겠다는 결의와 투지를 ‘빨간 마후라’에 담고 적진으로 출격했던 것이다. 정전 직전까지 총 8700여 회의 전투 출격 임무를 완수하며 공중전투와 작전임무를 수행하던 중 수많은 ‘빨간 마후라’들이 하늘에 목숨을 바쳤다.
‘빨간 마후라’는 6·25전쟁 기간 중 가장 열악한 여건 속에서 누란의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기 위해 창공에서 장렬히 산화한 수많은 선배 조종사들의 피와 땀과 혼이 배어 있는 성물이다. 공군은 3일 공군의 원로인 6·25 출격 조종사들과 공군의 모든 비행대대 대표 조종사들이 모인 가운데 ‘명품 빨간 마후라 헌정 및 조종사의 날 선포식’을 거행했다.
7월 3일은 우리 공군에 매우 특별한 날이다.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전폭기 F-51 무스탕이 처음 출격한 날이 1950년 7월 3일이기 때문이다. 6·25전쟁을 맞은 공군은 연락기 몇 대를 타고 손으로 폭탄을 투하하며 적에 맞서야 했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내게 전투기를 달라. 창공의 결전장으로 나가게 해 달라”는 조종사들의 절규가 맥아더사령부에 전해졌고, 1950년 7월 2일 10대의 F-51기를 원조받을 수 있었다.
이에 선배 조종사들은 바로 다음날인 7월 3일 최소한의 훈련만을 마친 상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최초 출격을 감행했다.6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공군의 ‘빨간 마후라’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섬세하고 품격 높은 손길을 거쳐 ‘명품 빨간 마후라’로 재탄생했다.
이렇게 다시 태어난 ‘빨간 마후라’는 위국헌신의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맡은 바 사명을 완수하는 데 전력하는 공군 조종사의 위상과 기개를 우리 국민들에게 뚜렷이 보이게 될 것이다.창군 초기, 어렵게 출발한 공군은 이제 세계 속의 강군으로 우뚝 섰다. 이는 “우리의 조국은 우리의 힘으로 지킨다”는 선배 조종사들의 투철한 애국심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용맹으로 조국을 굳건히 지켜낸 헌신적인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공군은 ‘빨간 마후라 헌정 및 조종사의 날 선포식’을 계기로 선배 조종사들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한다. 선배 조종사들이 그래 온 것처럼 우리 후배들도 자랑스러운 조국을 굳건히 지켜나갈 것이며,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을 지키는 가장 높은 힘’을 만들어 나가는 선두에 ‘빨간 마후라’가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윤흥기 대령 공군본부 정책관리처장>
[ 2008년 07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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