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 낙호(예 준위,준사관 28기, 광주지회 고문)
한반도에서 민족적 비극인 同族相殘의 6.25전쟁이 발발한지 어느덧 58년의 세월이 흘렀다. 6.25전쟁으로 인해 560여명의 국군포로와 480여명의 민간인 납북자가 현재 북한에 생존해 抑留되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 숫자는 탈북자를 비롯한 최근 귀환한 국군포로 및 납북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관계 기관에서 종합 분석한 자료라고 한다.
국군포로는 1996년 7월 국방부에서 국군포로 실종자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전산화 작업한 자료에 의하면 사망 22,562명, 실종 19,409명으로 도합 41,971명으로 되어 있다. 북한은 6.25전쟁 당시 65,000명의 국군포로를 생포했다고 주장해 오다가 1953년 7월 23일 휴전당시에는 대폭 감소하여 7,142명이라고 하였으며 실제 포로교환 시에는 남한에 8,333명을 인도한 사실이 있고, 중국은 1990년 抗美援朝戰史 발간 시 남한의 국군포로는 37,815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1994년 10월 24일 북한을 탈출 귀환한 趙昌浩(2006. 11. 19 숙환으로 76세시 사망)를 비롯하여 1997년 12월 귀환한 梁珣容씨 및 1998년 9월 귀환한 張茂煥씨 등 국군포로 3명이 모두 전사한 것으로 처리되어 국립현충원 位牌까지 奉安된 상태였던 사실을 감안하면 전사자 명단에 들어있는 사람 중에 생존 국군포로가 더 있을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귀환한 국군포로는 7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2007. 9. 1~9. 4까지(4일간) 미국 워싱톤 백악관 앞에서 6.25때 납치된 민간인 83,000여명의 이름을 부르는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미주피랍탈북인권연대와 일본의 희망을 위한 납북자 구조센터 회원들이 뒤늦게나마 생사불명인 납북자의 이름을 부르는 추모행사를 가져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납북자 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1992년 이후 중국을 수시 왕래하면서 납북자 1명이라도 더 귀환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2007년 1월 16일 31년만에 북한을 탈출 귀환한 납북어부 최욱일씨(67세)를 비롯하여 납북어부 이재근, 진정팔, 김병도, 고명섭씨 등을 귀환시키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최성용 대표가 납북자 歸還運動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67년 납북된 부친이 인민재판에서 총살 당했다는 소식을 탈북자를 통해 전해 듣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돌아온 납북자는 7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젊은 시절 反戰運動을 하며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했던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취임 첫해인 1993년 현충일 새벽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비를 찾아갔다. 몇 시간 뒤 열릴 추모식을 앞두고서였다. 클린턴은 베트남전 사망 실종자 60,000여명의 이름이 새겨진 긴 대리석 벽에서 고향 친구의 이름을 발견하고 무릎을 꿇었다. 클린턴은 친구의 이름을 어루만지면서 실종 군인을 찾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야드바셈」은 2차세계대전에서 학살당한 유대인 600만명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관이다. 「야드바셈」은 “이름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수백억원을 들여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진 관련 자료를 모아 약 320만명의 신상정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다. 지하 동굴처럼 생긴 어린이기념관에선 150만명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는 목소리 녹음이 울려 퍼진다.
2005년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6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파리에 “이름의 벽”이 세워졌다. 프랑스에서 나치 수용소로 끌려간 유대인 7,600명의 이름이 새겨진 대형 석조건물이다.
과거 서독정부는 1963년부터 동독과 비밀협상을 통해 동독에 현금 또는 현물을 지불하고 동독 정치범을 서독으로 데려왔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까지 약 34,000여명의 동독 정치범이 서독으로 넘어올 수 있었다. 서독은 정치범 석방대가로 26년 동안 총 34억 4,000만 마르크(약 1조 7,000억원)를 동독에 제공했다. 초기에는 주로 현금이었지만 나중에는 原油, 구리, 銀 등 현물 자원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석방초기에는 1인당 40,000마르크(약 2,000만원) 정도였으나 1980년대에는 1인당 100,000마르크(약 5,000만원)로 늘어났다.
지금 북한에 抑留되어 있는 국군포로 및 납북자들은 인권 최악의 死角地帶에서 악명 높은 아오지 탄광 등 강제노동 현장에서 죽도록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인간이하의 처참한 생활로 연명하면서 남한의 가족들과의 상봉을 갈망하며 탈출의 기회를 엿보고 살아온지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거의 고령으로 사망하고 생존기간이 얼마 남지 않는 인생 황혼기에 들어선 극소수만 남아 있기 때문에 同族愛의 人道主義的인 차원에서 時急을 要하므로 새 정부의 대북정책 중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이다.
새 정부의 192개 국정과제 중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와 관련된 남북간 인도적 문제 해결이 핵심과제에 포함되어 있어 늦은 감이 있지만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는 동안 남북관계에 있어서 인적,물적 교류는 많이 이루어지고 있고, 정부의 대북지원이 너무 퍼주기식이라는 사회일각의 비판 여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한에서 지하당 구축 활동 등 혐의로 34년 동안 복역타가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씨(2007년 6월 16일 89세시 사망)를 1993년 3월 同族愛의 人道主義的 次元에서 장기간 방북이라는 편법적인 방식으로 북송하여 북한에서 14년간 「통일의 영웅」칭호를 받으며 북한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크게 기여케 하였을 뿐 아니라 2000년에는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를 추가로 북송하였으나 우리 국군포로나 납북자는 단 1명도 송환된 사실이 없어 남북관계에 있어서 상호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정부의 대북정책이 너무나 허점이 많았음이 명백히 들어났다.
새 정부에서는 앞으로 대북정책에서 생존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의 早期送還을 최우선적으로 해결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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