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념관(관장 박장규)은 6.25전쟁당시 L-4 정찰비행대 조종사로 큰 공을 세우고 산화한 전구서(전구서, 1927년2월7일 ∼ 1950년10월7일) 공군 소위를 10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하고 지난 10월 7일 6.25참전동료 조종사, 공군전우회 김홍래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 공본 인사참모부장 및 10전비 현역 조종사 등 약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행사를 가졌다. 특히 이날 본회 김 회장은 공군예비역 단체를 대표하여 헌화 하였 으며, 참석자들은 고인의 유품관람을 하며 고인에 대한 넋을 기렸다.
전구서 공군 소위는 1927년 2월 7일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1943년 평양 제2공립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45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조선항공협회에서 조종사로 활약하였으며, 1948년 9월 육군 항공기지사령부 항공병 제2기로 입대하여 동년 11월 이등중사로 임관하였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7월 6일 대전에서 창설된 공군 정찰비행대는 전선이 남하함에 따라 김천·의성·영천기지로 이동하여 적정 정찰 및 연락임무를 수행하면서 한국군 제1·2군단의 작전을 지원 하였으며, 8월초에는 포항과 영천지구에 대한 북한군의 공세가 강화되자 영천기지에는 전구서 상사를 포함한 일부 병력만 파견대로 남게 되었다. 동년 8월 24일 전구서 상사는 L-4 연락기로 정찰작전 중, 포항 서북쪽의 기계 북방 방면으로 침입하는 적 지상군 2개 대대를 발견, UN 공군 F-51 전투기를 유도하여 적을 완전히 괴멸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1950년 9월 3일 북한군이 영천방면에 대한 대대적인 포위공격을 가해오자 육군 제2군단은 영천-포항을 연결하는 도로 남방까지 철수하게 되었다. 전세가 한층 긴박해진 9월 6일, L-4 정찰비행대 조종사로서 제2군단에 파견되어 있던 전구서 상사는 무장 없는 정찰기로 적의 대공포화를 무릅쓰고 적정을 정찰하던 중 영천지역 보현산 남방에 은폐된 적 포병부대를 발견하였다. 전구서 상사의 정찰보고는 위기에 처해있던 제2군단이 적의 진격로를 차단하고 적 포병부대를 포위, 섬멸함으로써 영천지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1950년 10월 7일 중부전선을 따라 북진하던 제6사단의 지상군작전 지원임무를 부여받은 전구서 상사는 L-4 정찰기를 조종하여 화천 상공에서 관측비행 중, 적의 대공포에 피격되어 24세의 젊은 나이로 애기(愛機)와 함께 장렬히 산화하였다.
정부는 개전(開戰) 이래 전구서 상사가 정찰기 조종사로서, 생사를 초월한 강한 투지와 사명감으로 영천지구 전투의 숨은 수훈자 역할을 수행한 그의 전공을 높이 평가하여, 1950년 10월 15일 공군 소위로 1계급 특진 및 1951년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